관음사지 ()

고전산문
문헌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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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개설

한문목판본. 속 제명은 ‘옥과현성덕산관음사사적(玉果縣聖德山觀音寺事蹟)’으로 되어 있다. 개간연대(開刊年代)가 옹정(雍正) 7년 기유(己酉)이니 1729년(영조 5)에 해당하며, 당시 주지는 가선해청(嘉善海淸)이라 하였다. 권말에는 「전라좌도옥과성덕산관음사유산록(全羅左道玉果聖德山觀音寺遊山錄)」이 첨부되어 있다.

내용

사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충청도 대흥현(大興縣)에 원량(元良)이라는 맹인이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홍장(洪莊)이라는 딸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원량이 하루는 밖에 나갔다가 홍법사(弘法寺) 승려 성공(性空)을 만나 눈도 뜨고 대화주(大化主)가 되는 길을 지시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열여섯살 된 어린 딸 홍장을 팔아주기로 약속하고 돌아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소랑포(蘇浪浦)에서 쉬고 있을 때, 마침 중국 선인(船人)들이 나타나 홍장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그녀를 사서 배에 싣고 가 진(晉)나라 혜제(惠帝)에게 바치게 된다.

이 무렵 혜제는 황후가 마침 죽고, 한 꿈에 새 황후가 될 여인이 동국에 있다는 꿈을 꾸고는 배에 보화를 실어 선인들을 떠나 보냈는데 우연히 홍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홍장은 황후가 되어서도 본국을 잊지 못하고 배에 관음상을 실어 동국으로 건너 보내게 하여, 그 배가 표류하여 기착한 땅에 큰 가람(伽藍)을 세우고 편액을 성덕산관음사(聖德山觀音寺)라 하였다.

그 뒤 원량은 공덕에 의하여 눈을 뜨게 되고 복록을 누리다가 95세에 죽었다.

의의와 평가

이 관음사연기설화(觀音寺緣起說話)는 고전소설 「심청전(沈淸傳)」의 근원설화(根源說話)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심청전연구(沈淸傳硏究)』(최운식, 집문당,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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