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74년(탈해왕 18) 왜인이 목출도에 침노하매 왕이 각간(角干) 우오(羽烏)를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
이 기록에 나타난 목출도가 섬이라고 할 때, 당시 신라 해안에는 왜인이 침입할만한 섬이 없었다는 점으로 보아 대마도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야의 세력이 김해지방에 미쳤다면 거제도는 신라영토일 수가 없다.
『대동여지도』상에 나타난 섬으로는 울산 대화강(大和江) 하류의 명산(鳴山)·죽도(竹島)·동백도(冬柏島) 등이 있으나, 이 섬들은 무인도이거나 주민이 거의 살지 않았으며, 동래(東萊) 앞바다에 오륙도와 몇 개의 섬도 이와 흡사하였다. 이러한 섬에 적이 쳐들어왔을 때 일국의 재상이 대군을 몰고 바다에 나아가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임나가라(任那加羅)는 성읍국(城邑國)을 뜻하는 것으로 대마도를 지칭한다. 따라서, 당시 신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목출도에 왜인이 침입하자 신라가 거국적으로 출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출도가 대마도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자료는 대마도에 있는 많은 한국계 지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