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 때의 이름은 골포현(骨浦縣)이었으나 경덕왕이 합포현(合浦縣)으로 바꾸어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282년(충렬왕 8)에 회원으로 고쳐 현으로 승격시켰다.
그 해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원나라와 연합하여 이곳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하였다. 조선 태종 때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을 합쳐 두 현의 글자를 따서 창원부(昌原府)라 하였다.
17세기에 실시한 대동법(大同法)에 의하여 창원을 중심으로 13개 군현의 세공미(稅貢米)를 이곳(馬山浦)에서 운반하였으므로 좌조(左漕)·해(海)·주산(舟山)과 같은 조창(漕倉)이 이곳에 설치되었다.
이전부터 물자수송의 요지로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가 설치되었으며 성을 쌓아 군사를 주둔시켰다. 물자의 집산을 위하여 육상교통이 매우 발달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원(漆原)·함안·진해·웅천·김해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망과 함께 부근에 근주(近珠)·신풍(新豊)·안민역(安民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