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산 ()

목차
인문지리
지명
함경남도 원산시와 덕원군에 있었다고 추측되는 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함경남도 원산시와 덕원군에 있었다고 추측되는 산.
내용

『삼국사기』에는 북명(北溟)의 지명이 두 번 나온다. 신라의 남해왕 때 북명인(北溟人)이 밭을 갈다가 예나라 왕의 인(印)을 얻어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과, 고구려 대무신왕 때 괴유(怪由)의 병이 위독하여 왕이 친히 가서 문병을 하니 “신은 북명의 미천한 사람으로 누차 후은(厚恩)을 입어 죽어도 산 것 같고 감히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괴유가 말한 기록이다.

왕은 그 말을 착하게 여기고 또 큰 공로가 있었으므로 북명산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기록으로 미루어 북명이 강릉을 명주(溟州)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은 의문이 간다. 『대동지지(大東地志)』의 기록에도 원산지방에 있었던 산산(蒜山)의 옛지명을 신라의 매시달(買尸達)로 표기한 점이나, 예나라 왕의 인이 나왔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원산지방이 타당하다고 본다.

명주의 북쪽에 있다는 의미의 북명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북명산은 현재 함경남도 원산이나 문천군 덕원면 지역에 있었던 산으로 추측된다. 북명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지명으로 해안지방에 진명포(鎭溟浦)가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현토군급임둔군고(玄菟郡及臨屯郡考)」(이병도, 『사학잡지』41-4, 1930)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