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당(廟堂)·사우(祠宇)라고도 하며, 민가에서는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제왕의 조상을 제향하는 종묘(宗廟)·태묘(太廟) 제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에는 왕궁의 정전(正殿)이나 왕이 정사를 돌보는 정당(政堂)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우리나라의 사당역사를 보면, 서기전 24년(동명왕 14) 고구려국왕모신묘(高句麗國王母神廟), 서기전 2년(온조왕 17) 백제국모묘(百濟國母廟)를 건립하였고, 358년(내물왕 3) 왕이 친사(親祀)하였다는 사실(史實)로 미루어 우리 민족의 사당[廟]문화의 발상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꽃핀 유교문화는 성균관 대성전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군현마다 문묘(文廟)를 세웠으며, 서원에는 명현사우(名賢祠宇), 명문(名門)마다 감실·별묘·영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밖에 망제(望祭)를 지냈던 서울 지방의 뚝신묘[纛神廟]를 비롯하여 강원도 삼척 지방의 동해묘(東海廟), 평안북도 의주 지방의 압강묘(狎江廟), 함경북도 경원 지방의 두만강묘(豆滿江廟) 등은 강신(江神)과 해신(海神)에 제사하던 사당이다.
그리고 명당(明堂)은 9실 가운데 중앙실을 태묘(太廟)라 하고, 둘려 있는 연못을 벽옹(辟雍)이라 하여 일반묘당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