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소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조선 초기 여진(女眞)에 대한 경제적인 회유 정책으로 국경 도시에 설치한 무역 장소.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초기 여진(女眞)에 대한 경제적인 회유 정책으로 국경 도시에 설치한 무역 장소.

내용

이곳에서 그들이 필요한 생활 필수품을 바꾸어 가도록 허락하였다. 1406년(태종 6) 도순문사(都巡問使) 박신언(朴信言)이 경성·경원 두 곳에 무역소를 설치해 여진인과의 교역을 허용함으로써 경제적인 교류를 통해 이들의 욕구를 충당시켜 주려고 하였다. 그가 주장한 설치의 목적과 동기는, 여진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염철(鹽鐵)을 자유롭게 사들이게 하여 변방의 근심을 방지하자는 데 있었다.

여진인들이 정치적으로 회유 정책에 순응한 것은 그 목적인 경제적인 이익의 획득에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욕구는 진상숙배(進上肅拜)라는 의례적인 증여의 성격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역소를 설치하였던 것이다.

여진인이 가지고 온 물건은 마필을 비롯해 해동청·산삼·각종의 모피 등이었다. 조선에서는 그들에게 면포·마포·저포·미두·염장·농구·종이 등을 주었다.

조선시대 외교 정책에 있어서 가장 부심했던 것의 하나가 여진이었다. 여진은 원래 원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명나라가 일어나자 형식상으로는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반농 반수렵 생활을 하면서 자주 조선을 약탈하였다.

이에 조선은 교린 정책을 쓰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무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동북면을 근거로 일어난 태조는 북방 개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두만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세종 때는 김종서(金宗瑞)에게 육진을 설치하게 하고 최윤덕(崔潤德)·이천(李蕆) 등에게 사군을 설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약탈이 완전히 그치지 않았으니 1583년(선조 16) 이탕개(尼蕩介)의 난이 그 대표적 예이다. 경성·경원의 무역소가 언제까지 존속하였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경원의 그것은 1410년 경원부의 치소를 경성으로 옮기면서 자연히 해소되고, 경성만이 존속했으나 폐지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경성·경원 무역소는 청나라 때 회령·경원의 북관개시(北關開市)와 평안도 중강개시(中江開市)의 연원이라는 점에서 한○만 교섭사상 주요한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한국만주 관계사의 연구』(이인영, 을유문화사, 1954)

  • - 「조선전기 서울에 온 왜야인」(이현종, 『향토서울』 10,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960)

  • - 「조선전기래조야인의 정략적대우에 대하여」(이현희, 『사학연구』 18, 196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