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삼존불상은 본존상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편에 관음보살과 오른편에 지장보살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불상으로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성종 7년인 1467년에 제작된 후불벽화(後佛壁畵)의 삼존상과 양식적 특징이 흡사하므로 거의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34년장흥 보림사(寶林寺) 삼층석탑을 보수할 때 사리구와 함께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와 함께 발견된 납석(蠟石)제 탑지(塔誌)에도 “成化十年四戊戌四月十七日……無爲寺造主佛設大會安居(성화십년사무술사월십칠일……무위사조주불설대회안거)”라고 기록하고 있어 무위사 극락전 삼존불상이 1478년에 봉안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아미타불상은 오른발이 보이는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놓은 길상좌(吉祥坐)이고, 무릎 폭이 상체에 비하여 유난히 넓은 편이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중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맺고 있어 아미타불임을 증명하고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두터운 옷인데, 왼쪽 어깨의 옷깃이 N자식으로 되었고, 하의(下衣)의 치마자락은 평행이며 띠매듭이 규격화된 점 등은 조선 초기 불상의 불의형식(佛衣形式)을 잘 나타내고 있다.
꽃장식을 오려 덧붙인 묵중한 보관을 쓴 관음보살상은 왼쪽 다리를 내린 반가좌(半跏坐)의 자세로, 내린 다리가 유난히 크고 퉁퉁한데, 이것은 무릎을 양감이 없이 처리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두건(頭巾)을 쓴 지장보살상은 관음보살상과는 반대로 오른쪽 다리를 내려 반가좌하고 있다. 특히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앞쪽에 흘러내린 옷주름은 아래 대좌에 표현되어 있어 불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둥글면서 약간 풍만한 단정하고 엄숙한 얼굴, 처진 젖가슴의 표현, 직선적인 군의 상단과 띠매듭, 넓은 무릎폭, 두터운 불의, 독특한 옷주름 등의 특징으로 볼 때, 고려 후기 단아양식(端雅樣式) 불상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불상이라고 하겠다.
이 삼존불상은 고려 후기 단아양식을 계승하면서 조선 초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작품으로 조선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삼존불이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극락전과 후불벽화와 더불어 같은 시기에 조성되어 당시 불상 봉안 방식에 대한 연구에도 그 중요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