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군과 거란유민의 최초의 충돌인 연주(延州)의 개평(역)전투가 있던 날 밤,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 노원순(盧元純)은 연주성으로 퇴각하여 기다렸다가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거부되었다. 그 대신 김취려(金就礪)의 주장에 따라 재빨리 몰아치는 속전을 감행하였다.
이 때 개평에서 물러난 거란유민들은 묵장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고려군의 공격을 받아 다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즉, 노원순이 달려가 김취려를 부르며 흑기를 들어 신호하니 사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격, 김취려는 아들의 죽음도 무릅쓰고 적진을 가로질러 가니 싸우는 곳마다 이겼다.
결국, 거란유민은 묘향산으로 패주하여 보현사(普賢寺)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저지르며 보복을 자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