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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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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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선공감주부, 사헌부감찰, 고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모계(茅谿)
  • 순부(純夫)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남평(南平,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631년(인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선공감주부|사헌부감찰|고령현감
  • 출생 연도1554년(명종 9)
  • 출생지경상남도 거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10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선공감주부, 사헌부감찰, 고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거창(居昌) 출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순부(純夫), 호는 모계(茅谿).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산두(文山斗)이며, 어머니는 함양선교랑(咸陽宣敎郞) 오세평(吳世平)의 딸이다. 조식(曺植) · 오건(吳健) ·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에서 의병들을 모집하고, 의병장 김면(金沔)과 함께 고령(高靈)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다. 김면이 싸움 중에 병으로 죽자 뒷일을 맡아 처리하였다. 또한, 부모의 상을 당하자 고향인 거창현 모계리(茅谿里)에 터전을 마련하고, 10여 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독행(篤行)으로 부제학(副提學) 김우옹(金宇顒),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에게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그 뒤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 ·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정인홍(鄭仁弘)과는 같은 조식의 문인으로 구면이었으나, 그가 대북(大北)의 집권자가 되자, 관계를 끊고 두문불출 독서에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 후 70세의 나이로 고령현감에 부임하였으나, 수개월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거창의 용원서원(龍源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모계집(茅谿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용주유고(龍洲遺稿)』

  • - 『모계집(茅溪集)』

  • - 『기언(記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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