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면적 1,119㎡. 199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문화 유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북으로 위에는 유희림의 묘역이 있는데 기단받침 위에 봉분을 하고 있으며, 상석 1기와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이 상설되어 있다. 묘표는 비신(碑身) 없이 받침돌만 남아 있으며, 향로석이 받침돌 없는 상석 앞에 설치되어 있다. 봉분이 하나인 것으로 보아 합장묘인 듯하다.
아래 있는 쌍분은 그 묘표석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행통정대부 영평현령(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行通政大夫永平縣令) 유복룡과 정부인 평강 채씨(貞夫人平康蔡氏)의 묘소이다. 상설로는 묘표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이 있으며, 유일하게 신도비가 있다.
한편, 공조참의 유인호(柳仁豪)와 숙부인(淑夫人)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합장묘는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거창 신씨 묘역 옆에 같이 있다. 이 봉분 역시 기단석 위에 설치되었으며 앞에는 묘표 1기, 망주석 1쌍, 상석 1기가 상설되어 있다.
이곳은 199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과 인접해 있는데, 모신 인물의 생존연대로 보아 원래 이곳은 거창 신씨 묘역이었는데, 문화 유씨와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두 집안의 종중 묘역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묘역의 중심 인물은 유희림으로, 그는 1560년(명종 15) 성균관 유생으로서 1,000여 명의 유생을 대표하여 다시 일어나고 있는 불교를 비판하고 선 · 교양종(禪敎兩宗)을 폐지하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다음해 문과에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형조참판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 왕을 호종(扈縱:왕의 행차를 따라가는 것)하여 좌승지가 되고, 유성룡과 함께 세자 광해군에게 군국기무를 관장하도록 상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죽은 후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