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
이칭
  • 문현(文賢)
  • 이명민진호(閔晉鎬)
  • 복재(復齊)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을미사변
  • 대표 상훈건국훈장 애국장(1977)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1922년
  • 성별남성
  • 주요 경력관동창의소 의병진 의병장
  • 주요 저서복재집(復齊集)|병신일기(丙申日記)
  • 출생 연도1869년
  • 출생지경상남도 산청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헌주 (연세대 HK교수)
  • 최종수정 2025년 02월 2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민용호는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이다. 원래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릉으로 들어가서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고 고성, 양양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을 떠나 회양과 금성 방문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후 북쪽으로 행군하여 만주로 들어가면서 의병 활동을 종료하였다.

정의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

인적사항

민용호(閔龍鎬, 1869~1922)는 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1869년 10월 29일 민치겸과 연안이씨 사이의 5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25세경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으로 옮겨 민치우의 양자가 되었다. 자는 문현(文賢), 호는 복재(復齊), 이명(異名)은 민진호(閔晉鎬)이다.

주요 활동

민용호는 경기도 여주의 청년 문사(文士)로 을미사변 이후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후에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한 관동창의소 의병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경기도 지역에서 여러 의병진과의 합동 작전을 피하고, 산악지대인 관동 방면으로 나가서 활동할 것을 결심하였다.

민용호가 여주에서 거느리고 떠났던 병력이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도중 강원도 원주에 들러서 상당수의 병력을 충원한 후 평창 · 진부를 거쳐 대관령을 넘어서 1896년 1월에 강릉으로 들어갔다.

안승우가 1896년 1월에 민용호에게 연합의진을 제의하였으나 민용호는 거절 후 예정대로 강릉으로 들어가서 당시 강릉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영동 방면의 의병들과 세력을 합하였다. 산군(山郡) 지방의 포수들을 모집하여 영동 9군 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이병채 · 최중봉 등 의병장들과 함께 부서를 정하며 포고문(布告文)을 각 지방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강릉에 들어와서 관동 9군 도창의소를 설치한 민용호는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오랫동안 사냥을 직업으로 삼아 오던 포수들을 모집하여 자체의 실력을 충분히 한 다음 관북 방면으로 진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후 3월 개항장이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함경남도 원산(지금의 북한 강원도 원산시)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원산 공격에 실패한 그는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서 영남 기타 각처 의병과 연락을 취하고 또 삼척 · 횡성 등지의 의병 세력을 모아서 재거(再擧)할 것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6월 초에는 고성 · 양양 등지를 점령하고 군수를 처형하였다. 또한 관동창의소 포유문을 발표하여 흔들리는 민심 수습에 전념하였다.

7월 함경도 의진과 제휴하여 제2차 원산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8월 초 500여 군사를 이끌고 강릉을 떠나 회양 · 금성 방면에 진출, 격전을 벌였다. 여기에서 민용호는 그 지역에 흩어져 있던 일부 지방 의병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암의 의진이 지난 직후였기 때문에 경군과 그 지방 관군들의 경계는 매우 삼엄하였다. 이러한 주위의 정세를 살핀 민용호는 최문환 등과 함께 다시 방향을 바꾸어 함경도 쪽으로 향하여 9월 초 고원 · 영흥 · 정평을 거쳐 중순에는 함흥으로 들어가 관찰사 서리 김택수를 쫓아내고 함흥부를 차지하였다. 이때 그의 병력은 200명 가량이었다.

그러나 대세는 여기서도 그들의 장기 주둔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지방의 의병들을 모아 병력을 충원한 다음, 다시 북쪽을 향하여 행군하여 나중에는 강 건너 만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유인석 등의 중추 세력도 해산하게 되어 평안도 지역 의병의 활동도 종식되었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저서로는 『복재집(復齊集)』 · 『병신일기(丙申日記)』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박민영, 『화서학파 인물들의 독립운동』(역사공간, 2019)

  • 논문

  • - 오영섭, 「春川地域의 乙未義兵運動」(『북한강 유역의 유학사상』,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8)

  • - 이상찬, 「1896년 의병장 閔龍鎬의 實體」(『奎章閣』 20, 서울大學校 奎章閣, 1997)

  • - 이청희, 「復齋 閔龍鎬의 義兵活動」(『嶺東文化』 第6輯, 關東大學校 嶺東文化硏究所, 1995)

  • - 박민영, 「閔龍鎬의 江陵義兵 抗戰에 대한 연구」(『한국민족운동사연구』 5,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1)

  • - 박민영, 「江陵義兵將 閔龍鎬의 生涯와 擧義 論理」(『윤병석교수화갑기념 한국근대사논총』, 한국근대사논총간행위원회, 1990)

  • 기타 자료

  • - 『독립운동사』 1, 2, 5, 8권(국가보훈처)

  • - 『독립운동사자료집』 1~3권(국가보훈처)

주석

  • 주1

    : 널리 펴서 알리는 글. 우리말샘

  • 주2

    : 두 번째로 일을 벌임. 또는 그 일. 우리말샘

  • 주3

    :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 주4

    :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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