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응(景應), 호는 양졸당(養拙堂). 민원(閔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민기문(閔起文)이고, 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郎) 민이(閔涖)이며, 어머니는 태인수(泰仁守) 이관(李琯)의 딸이다. 6세에 고아가 되어 할아버지 민기문 밑에서 성장하였다.
1589년(선조 22) 진사가 되고, 1591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전적(典籍)과 병조좌랑을 지냈다. 임진왜란 이후 경기도도사(京畿道都事)·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호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호조정랑에 올라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을 겸임하였다. 죽은 뒤 아들 민성휘(閔聖徽)[초명 민성징(閔聖徵)]이 높은 벼슬에 오르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