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2월 22일 김규식(金奎植)을 영도자로 민생문제 해결을 표방하면서 조직되었다.
본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이었으나 좌우합작 7원칙의 토지문제와 신탁통치문제를 둘러싸고 주류파와 의견이 대립된 원세훈(元世勳) 등의 제1차한국민주당 탈당파와 김약수(金若水) · 이순탁(李順鐸) 등 제2차탈당파들이 극좌와 극우의 편향을 지양하고, 김규식을 영도자로 추대하여 정당의 성격을 떠난 민생문제 해결의 추진체로 성립하였다.
1946년 10월 29일김약수 · 고창일(高昌一) · 서세충(徐世忠) · 이순탁 · 김상덕(金尙德) · 임의택(林義澤) · 송남헌(宋南憲) 등 31명이 민중동맹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그 해 12월 22일 서울 천도교 강당에서 대의원 800여명이 모여 결성대회를 열고,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좌우합작을 지지하며, 조선민주임시정부수립을 공약한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미소공동위원회의 속개를 요망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때 총재에 김규식, 상임위원에 김약수 · 이순탁 등 31명, 의장단에 서세충 · 김상덕 · 장자일(張子一) · 이순탁 · 김약수 · 김순애(金淳愛) · 박문희(朴文喜) 등의 간부진용을 구성하였다.
좌우합작위원회의 발족을 계기로 결성된 민중동맹의 발족은 중간파 정치세력의 형성을 촉진하였으며,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시에 7명이 관선의원으로 선임되어 입법의원 안에서 여당적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동맹 내의 파쟁이 격화되어 총재 김규식은 총재사퇴를 선언하고 김약수계는 집단탈퇴하여 조선공화당(朝鮮共和黨)을 결성하였으며, 원세훈계는 탈퇴하여 조선농민당(朝鮮農民黨)을 결성함으로써 자연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