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사학 ()

근대사
개념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대전제 아래 민족적 · 사회경제적 모순구조를 분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해 가는 민중의 활동을 역사서술의 중심에 두는 역사학계의 학문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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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대전제 아래 민족적·사회경제적 모순구조를 분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해 가는 민중의 활동을 역사서술의 중심에 두는 역사학계의 학문사조이다. 1980년대 초반 정창렬, 이만열, 강만길 등이 민중의 역할을 중시하는 시대적 경향을 수용하여 제시하였다. 역사문제연구소·망원한국사연구실·한국근대사연구회·한국역사연구회·역사학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민중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 민중적 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하면서도 민족주의를 상대화하고, 도식적 역사발전 단계론을 비판하며 민중의 자기 해방 과정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정의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대전제 아래 민족적 · 사회경제적 모순구조를 분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해 가는 민중의 활동을 역사서술의 중심에 두는 역사학계의 학문사조.
개설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민중적 민족주의사학’을 가교로 하여 1980년대 중반부터 발전하였다.

1970년대 제3공화국(유신정권)의 정치 · 경제적 위기 속에서 집권층의 한계가 드러나고 노동운동 · 주민운동 등이 활성화됨에 따라 학계에서는 일반 대중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사회과학계에서는 ‘민중론’이 제기되었으며,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이와 보조를 같이해 민중사학론이 제창되었다.

연원 및 변천

민중사학론은 1980년대 초반 민족주의사학의 연장선상에서 제시되었다. 정창렬(鄭昌烈)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민중이 인간 해방 · 사회 해방 · 민족 해방을 유기적으로 수행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만열(李萬烈)은 민중의식에 입각한 민족사관을 제창하였다.

강만길(姜萬吉)은 1984년에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간행해 민족적 · 민중적 ·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체계화하였다. 한국근대사 부문에서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해 조선봉건사회의 해체과정을 설명하고 개항 후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 반봉건 민족운동의 발전을 민중운동의 성장으로서 서술하였다.

한국현대사 부문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경우,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한계와 친일화 과정, 민중운동의 성장과 사회주의적 민족운동의 발전, 좌우익의 민족협동전선운동과 건국준비운동을 서술했고, 해방 이후에 대해서는 이를 분단시대 또는 통일운동시대라는 시각으로 정리하였다.

이상의 연구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사학’이라기보다는 ‘민중적 민족주의사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민족주의사학, 또는 민족사관의 틀 안에서 민중의 역할을 중시하는 시대적 경향을 수용한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제기된 민중적 민족주의사학론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신진 연구자들이 ‘실천적 · 과학적 역사학’의 수립을 표방하고 조직적인 학술운동을 전개하면서 좁은 의미의 민중사학 체계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에 창립된 역사문제연구소(1984년) · 망원한국사연구실(1984년) · 한국근대사연구회(1987년) ·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 구로역사연구소(1988년. 현 역사학연구소)등은 전반적으로 민중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내부적으로 다양한 연구경향을 포괄하고 있어 이 단체들의 지향점을 민중사학과 바로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역사연구단체들의 출범과 때를 같이해 일부에서는 민중사학론에 입각해 한국사 통사를 체계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1986년에 발간된 『한국민중사』Ⅰ · Ⅱ(한국민중사연구회 편)가 그것으로서, 민중의 저항적 측면만을 부각함으로써 전체 역사의 발전상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후 역사연구단체 회원들의 실증적인 공동연구를 통해 학술성을 갖춘 연구성과들이 발표되었다. 연구분야는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구성 및 변동, 1862년 농민항쟁과 1894년 농민전쟁, 의병전쟁, 3 · 1운동, 일제하 민족개량주의운동의 한계, 일제하 사회주의운동 및 노동 · 농민운동,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1945년 8 · 15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과 민중운동 등 주로 조선후기 이후의 사회운동사 분야에 집중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출간한 『한국사강의』(1988년) · 『한국역사』(1992년)와 구로역사연구소의 『바로보는 우리역사』Ⅰ · Ⅱ(1990년)는 민중사학적 시각을 주로 반영하면서 한국사의 발전과정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통사이다.

좁은 의미의 민중사학은 민중적 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하면서도 민족주의를 상대화하고 민중의 자기 해방 과정을 보다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민족 해방은 한 과정이며 보다 궁극적으로는 민족 내부의 사회경제적 갈등, 불평등까지 해소되어야만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적 유물론의 시각과 부분적으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민중사학은 도식적 역사발전 단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소련 ·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해체를 목도하면서 민중의 해방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체적 자각과 사회 전반의 민주화에 의해서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라는 데까지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탈린주의적 사적 유물론과 차별성을 지닌다. 1990년대 이후 역사학계에서 북한현대사를 실증적 ·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된다.

의의와 평가

민중사학은 이론과 실증 양면에서 아직 하나의 정립된 학문체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선언적 명제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 안에는 여러 갈래의 경향이 혼재되어 있다.

이론적 체계화의 난점은 ‘민중’ 개념 자체의 모호성과 관련이 있다. ‘민중’을 ‘피억압대중’이라고 하는 초역사적 범주로 설정하기도 하며 근대 이후의 산물로서 제한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또한 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생산대중과 동일시하기도 하며, 민족주의적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민중을 소수의 특권층 · 친외세 계층을 제외하고 노동자 · 농민은 물론 민족자본가 · 지식인 등을 포괄하는 범주로 설정하기도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중사학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조류 안에서 사회경제사학과 민족주의사학 양자를 함께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이론적 체계화의 난점을 제공하고 있다. 1920∼30년대에 한국 역사학계에서 정립된 사회경제사학과 민족주의사학은 본래 대립관계에서 출발했으며, 그 후에도 상호 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였다.

민중사학계에서는 두 역사학의 흐름을 ‘반제국주의 민족민주사학’이라는 범주에 포괄하고 양자를 통합 · 지양하기 위한 이론적 · 실증적 모색을 진행 중이다. 그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민중사학은 한국 역사학계에서 단지 하나의 실천지향적 연구경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사연구와 과학성』(이세영, 청년사, 1997)
『현대한국사학(現代韓國史學)과 사관(史觀)』(노태돈 외, 일조각, 1991)
「유물사관(唯物史觀)과 현대의 한국사학」(이기백, 『한국사시민강좌(韓國史市民講座)』20, 1997)
「1970년대 중반 이후 진보적 한국사학자들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동향」(서중석, 『대동문화연구(大同文化硏究)』32, 1997)
「한국 현대의 민족사학의 전개와 민중사학」(이윤갑, 『한국학논집(韓國學論集)』22,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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