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중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진사가 되었으나, 스승인 송시열의 탄핵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과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한 학자.
이칭
사앙(士昻)
평사(平沙)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0년(인조 18)
사망 연도
1692년(숙종 18)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참봉|금정도찰방|장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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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진사가 되었으나, 스승인 송시열의 탄핵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과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한 학자.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앙(士昻), 호는 평사(平沙). 아버지는 현감 민광혁(閔光爀)이다. 어려서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의 형제로부터 글을 배웠다. 뒤에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64년 함경도관찰사 서필원(徐必遠)이 송시열을 탄핵하는 일이 생기자 성균관유생의 대표로서 스승을 변론하는 소를 올렸다.

이로써 왕의 미움을 받아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몰두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1681년(숙종 7) 참봉(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을 지내다가 죽었다. 죽은 뒤 효행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장령(掌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한수재집(寒水齋集)』(권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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