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활동한 밀교의 승려.
##주요 활동 밀본(密本)은 신라 선덕여왕 때 활동했던 밀교의 승려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주(神呪)」에는 그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두 편 전한다. 밀본은 금곡사(金谷寺)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선덕여왕이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興輪寺) 승려인 법척(法惕)을 불러 병을 치료하려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에 신하들이 밀본에게 치료를 청하자 밀본이 왕의 거처에서 『약사경』을 읽었다. 그가 읽기를 마치자 밀본의 육환장(六環杖)이 침실로 날아 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중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로 내던졌는데, 그리고 나서 왕의 병도 곧 나았다.
또한 승상 김양도(金良圖)가 어렸을 때,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김양도는 큰 귀신 하나가 작은 귀신 무리를 이끌고 집 안에 들어와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번 보았다. 무당을 청해 굿을 하면 귀신들이 다투어 그를 모욕하였고, 양도가 귀신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그의 아버지가 법류사(法流寺)의 승려를 청하여 불경을 읽게 하였다. 그러나 양도에게 붙어있는 큰 귀신이 작은 귀신에게 시켜 승려의 머리를 철퇴로 쳐 죽게 할 뿐 그의 병에는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 밀본을 모셔오게 하였는데, 여러 귀신이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였다. 작은 귀신이 말하기를 "법사가 오면 불리하니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큰 귀신이 거만하게 “법사가 온다고 무엇이 해로우랴.”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사방에서, 쇠갑옷을 입은 크고 힘센 신령들이 긴 창을 가지고 와 여러 귀신을 붙잡아 묶어갔다. 이어서 셀 수 없는 천신들이 둘러서서 기다리자 오래지 않아 밀본이 도착하였다. 그가 경을 펼치기도 전에 김양도는 병이 나아 말이 통하고 몸도 풀리게 되었다. 김양도는 이후에 불사(佛事)에 정성을 다했는데, 흥륜사(興輪寺) 법당의 주불인 미륵존상과 좌우의 보살상을 소상으로 만들어 봉안하였고, 불당에 금색으로 벽화를 가득 그려 공양하였다고 한다.
위와 같은 선덕여왕과 김양도에 관련된 밀본의 일화는 불교와 전통 신앙 간의 갈등, 그리고 신라 사회에 미쳤던 밀교의 역할과 영향력을 알려 준다.
밀본이 선덕여왕과 김양도의 병을 치유할 때 사용한 『약사경』은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 또는 『관정경』 권12에 해당하는 『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灌頂拔除過罪生死得度經)』이라고 추측된다. 두 경 모두 약사여래의 12대원을 비롯한 의례를 설하는 것인데,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밀교 승려인 밀본이 불경에 근거하여 병을 치료한 것은 귀신이나 여우로 상징되는 전통적 무속신앙과 차이가 난다. 이와 같은 밀본의 일화는 무의(巫醫)가 담당하던 의료 행위를 승려들이 대체해가면서 불교가 점차 사회적 기반을 넓혀 나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논문
- 김연민, 「密本의 『藥師經』 신앙과 그 의미」(『한국고대사연구』 65, 2012)
- 옥나영, 「『관정경』과 7세기 신라 밀교」(『역사와현실』 63, 200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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