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불교
문헌
1102년, 고려 흥왕사에서 간행한 불교 경전.
이칭
약칭
약사경, 약사여래본원공덕경, 약사본원경, 약사여래본원경, 약사본원공덕경
문헌/고서
간행 시기
1102년(숙종 7)
권책수
1권 1책
권수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
판본
목판본
표제
약사경권지일(藥師經卷之一)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1102년 고려 흥왕사에서 간행한 불교 경전이다. 당 현장이 한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본서는 서체와 경판의 판식 등이 요장과 유사하며, 고려 흥왕사에서 요장을 저본으로 번각하면서 판제의 위치나 내용을 변경하여 간행한 단본경에 해당한다. 요장 연구의 새로운 자료라는 점에서 불교서지학적 의의가 있고, 기타 요장본 『약사경』이 고려에 수용되어 활용된 점에서 불교 문화의 교류사적 의의가 있다.

정의
1102년, 고려 흥왕사에서 간행한 불교 경전.
역자

현장(玄奘, 602~664)은 당대의 고승으로 본성은 진(陳), 이름은 의(禕), 낙주 구씨(洛州 緱氏) 출신이다. 법상종을 창시하였고 삼장법사로 존칭되었으며, 주1, 주2와 함께 중국 3대 역경가로 칭해진다. 현장은 당 정관 원년 인도로 출발하여 나란다사(那爛陀寺)에서 17년간 당시 대 · 소승의 각종 학설을 두루 배웠으며, 645년 불 사리 150립(粒), 불상 7존(尊), 경론 657부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제자들과 경전 75부 1,335권을 한역하였는데,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주3, 『반야심경(般若心經)』, 『해심밀경(解深密經)』,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이 있다.

서지사항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은 권수제가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일권(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一卷)’이고, 권미제는 ‘약사여래본원공덕경일권(藥師如來本願功德經一卷)’으로 차이가 있다. 판제는 없고 제1행과 제2행의 사이에 주4가 새겨져 있다. 표지는 기름을 먹인 두꺼운 다갈색의 종이이고, 표제는 ‘약사경권지일(藥師經卷之一)’이 묵서되어 있다. 장정선장으로 주5하였다. 목판본이고 1권 1책이다. 본서는 주6 형식으로 간행되었으며 판식은 사주단변에 무계이고, 1판의 길이는 55.0㎝, 광고 22.0㎝이며, 1판 24행, 1행 15자, 전체 15장이다. 종이는 고려시대 저지이고, 경전 전체에 구두점이 새겨져 있다. 본서에는 권수제의 아래에 한문대장경의 특징인 천자문 함차호 ‘국(鞠)’자가 새겨져 있어 대장경을 저본으로 간행한 별행경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대장경은 북송의 『개보칙판대장경』[이하 개보장], 『고려초조대장경』[이하 초조장], 그리고 거란의 대장경인 『요장(遼藏)』이 있었다. 개보장의 편성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초조장의 함차호는 ‘공(恭)’이므로 이를 저본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주7에 수록된 주8의 함차호는 ‘국(鞠)’자에 해당하는데, 요장과 요장을 번각한 『방산석경』에 계승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요장본 『약사경』의 함차호는 ‘국(鞠)’자로 추정되므로 본서의 함차호는 요장본에서 유래되었고 그 저본 역시 요장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서의 서체는 구양순체로 요장본의 자체와 유사하며, 판식 역시 요대의 장소(章疏)와 유사하다. 본서와 요장본의 공통점으로는 서체, 1행 15자의 행자수, 판차의 위치, 변란의 높이, 천자문 함차호, 권수제와 권미제의 좌우에 계선을 두어 구분한 점, 권미제의 약기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본서의 서체, 경판의 판식의 유사성에 의거, 흥왕사에서 1행 15자 판식의 요장을 저본으로 번각하면서 판제의 위치나 내용을 변경하여 간행한 단본경(單本經)이라 할 수 있다. 본서의 권수에는 소장인으로 추정되는 ‘윤석창인(尹錫昌印)’이 날인되어 있고,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간행 경위

본서의 간기는 ‘건통이년임오세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乾統二年壬午歲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라는 구절로 미루어보아 1102년(숙종 7)에 흥왕사에서 왕명을 받들어 조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서의 간행 경위는 미상이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입적 이듬해에 간행된 것으로 미루어 구병(救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구성과 내용

본서는 전체 1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여러 부처의 주9주10을 설법해 주기를 청하자 석가불(釋迦佛)약사여래의 12대원 및 공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은 12대원에 대한 설명, 약사여래를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무한한 공덕과 이익, 약사여래에 귀의한 12야차대장(夜叉大將)들이 약사여래를 받드는 모든 이들을 보호할 것을 맹세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 있는 불국토인 정유리국(淨瑠璃國)에 머무는 약사유리광여래는 보살행을 행하면서 12가지 큰 서원[大願]을 세웠다. 이 약사여래의 12대원은 ①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 : 生佛平等願], ②수의작사업원[隨意作事業願 : 開曉事業願], ③득무진물원[得無盡物願 : 無盡資生願], ④안립대승원[安立大乘願 : 安立大道願], ⑤구계청정원[具戒淸淨願, 具三聚淨戒願 : 戒行清淨願], ⑥근완구병고원[根完救病苦願 : 諸根具足願], ⑦제병안락원(除病安樂願), ⑧전녀득불원[轉女得佛願 : 轉女成男願], ⑨안립정견원[安立正見願 : 回邪歸正願], ⑩제난해탈원[除難解脫願 : 解脫憂苦願], ⑪음식포족법미안락원[飮食飽足法味安樂願 : 得妙飲食願], ⑫의복일체장엄구족원[衣服一切莊嚴具足願 : 得妙衣具願]이다.

의의 및 평가

본서는 경문의 내용이 요장과 동일하고, 판본의 서지적 특징 역시 요대의 판본 특히 요장본과 유사한 것으로 요장을 모본으로 하여 판각된 번각본에 해당한다. 본서는 일부만 남아있는 요장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서지학적 의의가 있다. 또한, 요장본 『약사경』이 고려에 수용되어 활용된 점, 그리고 현전하는 현장 역 『약사경』의 최고본이라는 점에서 불교 교류사 및 불교 문헌학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

단행본

유부현, 남권희, 方廣錩,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천혜봉, 박상국, 『동산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動産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문화재관리국, 1992)
『仏書解説大辞典』 11(小野玄妙 編, 東京:大東出版社, 1933)

논문

박용진, 「신라 태현찬(太賢撰) 『약사경고적기(藥師經古迹記)』의 유통과 의의」(『불교학보』 82,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8)
정병삼, 「7-8세기 동아시아 『약사경』 해석의 특성」(『불교학보』 65,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3)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중국 오호 십육국 때의 인도의 승려(344~413). 수많은 불전을 한역(漢譯)하여 중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번역한 책에 ≪법화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인도의 브라만 출신의 승려(499~569). 4대 한역자(漢譯者)의 한 사람으로 경론(經論)을 한역하였다. 번역한 책에 ≪섭대승론≫,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대승기신론≫, ≪금광명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반야를 설파한 여러 경전을 집대성한 책. 대승 불교의 근본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번역하였으며 모두 600권이다. 우리말샘

주4

책장의 차례. 우리말샘

주5

포장, 장식 따위를 고쳐 다시 꾸밈. 우리말샘

주6

두루마리로 된 책자. 또는 그렇게 책의 겉모양을 꾸미는 방법. 우리말샘

주7

당나라 개원(開元) 18년(730)에 승려 지승(智昇)이 엮은 불교 경전의 목록. 가장 잘 정비된 불교 경전의 목록으로, 전반에서는 한역(漢譯) 불전(佛典)을 시대별·역자별(譯者別)로 정리하고, 후반에서는 불전의 내용에 따라 종류별로 구분하였다. 우리말샘

주8

약사유리광여래의 본원(本願)과 공덕을 설명한 경전. 우리말샘

주9

큰 소원. 우리말샘

주10

착한 일을 하여 쌓은 업적과 어진 덕.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용진(국민대학교 교수, 한국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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