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은 약칭 『화엄경』이라고 부르는 경전으로 석가의 크고 넓은 깨달음과 장엄하고 방정한 이치가 담긴 대승경전이다. 『화엄경』은 3종의 한역본(漢譯本)이 있다.
첫째, 동진(東晉) 때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진본(晉本) 60권 『화엄경』. 둘째, 당(唐)나라 즉천무후(則天武后)가 황제로 있을 때 국호를 주(周)라 고치고 집정당시인 695년에서 69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주본(周本) 80권으로 진본 60 화엄에서 누락된 것을 보충, 증여한 것이다.
셋째, 당나라 정원연간(貞元年間, 785∼804)에 반야(般若)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만을 다시 번역한 것으로, 이를 정원본(貞元本) 또는 40화엄경이라고 한다. 이 판본은 실차난타가 한역한 주본 80권 중 권1과 권29로 초조본 『화엄경』으로는 각각 처음 발견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고려 때 『화엄경』의 간행은 두번에 걸쳐 크게 시도되었다.
처음에는 1011년(현종 2) 거란이 개경으로 침입하자 군신(君臣)들이 호국의 일념으로 거국적으로 발원(發願)하여 1087년(선종 4)에 완성을 본 초조대장경이고, 두번째는 1231년(고종 18)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한 뒤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던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1236년(고종 23) 조조에 착수, 1251년(고종 38) 완성한 재조대장경이다.
초조본인 이 『화엄경』 권1과 권29는 각각 권자본으로 1권 1축이며, 지질(紙質)은 저지(楮紙:닥나무로 만든 한지)이다. 권1은 권두에 홍경(弘景) 등 「필역진전문(畢譯進箋文)」으로 시작하여 총목차가 기재되고, 이어 황제의 서문이 열기(列記)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한역할 때 참여한 인물들의 명단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재조본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밖에 재조본과 구별되는 것으로 피휘결획(避諱缺劃)된 ‘竟(경)’ 및 ‘敬(경)’자 등이 재조본에서는 피휘되지 않고 완전하다. 또 판식(版式)에 있어서는 초조본이 매장 23행 14자인 데 비하여 재조본에서는 24행 17자의 소자(小字)로 되어 있어 보다 조밀하다.
장차표시도 초조본이 ‘丈(장)’이나 ‘幅(폭)’ 등으로 되어 있는 반면 재조본은 ‘張(장)’으로 일괄표시되어 있다. 한편, 간기는 재조본 권1에는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 권29에는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雕(갑진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 등으로 정확히 기재되어 있으나, 이들 초조본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또한, 판각술(板刻術)에 있어서는 초조본이 재조본에 비하여 각자(刻字)가 보다 정교하고 정연하며 묵질(墨質)이 보다 농후하고 윤택하여 재조본과 확연히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