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대승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은 세 차례 한역되었다. 가장 먼저 한역된 것은 동진(東晉)에서 422년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60권본 『화엄경』으로, ‘육십화엄경’, ‘진본(晉本)화엄경’, ‘구역화엄경’ 등으로 부른다. 699년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본은 ‘팔십화엄경’ 또는 ‘신역화엄경(新譯華嚴經)’ · ‘주본화엄경(周本華嚴經)’으로 불리는 경전이다. 40권본은 798년 당나라에서 반야삼장(般若三藏)이 번역한 것으로 ‘정원본화엄경(貞元本華嚴經)’이라고도 부르는데,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을 번역한 것이다. 이 세 종류의 『화엄경』을 삼본화엄경이라 하며, 모두 대장경에 입장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초조대장경은 현종 대 송에서 수입한 개보장(開寶藏)을 바탕으로 조성했으며, 문종과 선종 대 송에서 추후 판각된 대장경에 요나라 대장경을 추가하여 완성되었다.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을 포함한 삼본화엄경은 현종 대 수입한 개보장 본장(本藏)을 복각(覆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보장 본장은 성종 8년, 성종 10년, 현종 10년, 현종 13년에 걸쳐 고려에 전래되었다. 본장을 고려에서 새긴 기록은 1011년(현종 2)과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하고 1022년(현종 13) 작성한 「현화사비음기(玄化寺碑 陰記)」에 적혀 있어 주목된다.
현존하는 『주본대방광불화엄경』에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우선 한 면당 23행 14자로 재조대장경의 『화엄경』이 24행 17자인 것과 비교된다. 본문에는 ‘경(敬)’과 경(竟)‘자에 결획이 있는데, 송 태조(太祖)의 할아버지의 이름 조경(趙敬)을 피휘했기 때문이다. 책의 장수를 표시할 때 ‘장(丈)’자를 쓰고, 초조대장경의 간행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한편, 수(首)함에 해당하는 권75 경판의 사례처럼 경판 앞 부분에 주(周)자와 각수명이 새겨져 있어 고려에서 초조대장경을 판각할 때의 각수를 알 수 있다.
권1의 권수에는 표전문(表箋文), 황제서문(皇帝序文)인 「대주신역대방광불화엄경서(大周新譯大方廣佛華嚴經序)」,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순서를 새긴 「총목차」 등이 있다. 권수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제목 아래 ‘신역(新譯)’이라 부기하여 주본임을 알 수 있다.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은 경기도박물관,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삼성출판박물관, 호림박물관, 전주한지박물관 등에 있다.
초조대장경의 형태와 특징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현재 목판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초조대장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아우러 고려대장경뿐만 아니라 『초초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의 저본이 된, 현존하지 않는 송의 개보장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