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년(현종 12) 건립. 비신높이 2.36m, 너비 1.28m.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40호. 옥개석 · 비신 · 귀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귀부의 조각은 생동감이 있으며, 이수의 장식적인 운룡문이나 비신 측면의 운룡문도 조각이 뛰어나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제59호)와 비슷한 양식이다. 비문에는 현종이 양친인 안종(安宗)과 헌정왕후(獻貞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현화사를 창건하였다는 창건연기와 절의 규모, 연중행사 및 국가에서 베푼 여러 가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뒷면에 추가하여 새긴 음기(陰記)에 의하면, 현종이 국가의 번영과 사직의 안녕함을 위하여 매년 4월 8일부터 사흘간 밤낮으로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베풀고, 양친의 명복을 위해서는 매년 7월 15일부터 사흘간 밤낮으로 미타불회(彌陀佛會)를 열었다고 한다.
또한,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 3본의 『화엄경(華嚴經)』 · 『금광명경(金光明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의 인판(印板)을 새겨 이 절에 두었으며, 특별히 ‘반야경보(般若經寶)’라 부르며 길이 시방(十方)에 인시(印施)하게 하였다 한다. 비신 상단에 현종의 어필로 “靈鷲山大慈恩玄化寺之碑銘(영취산대자은현화사지비명)”이라 전(篆)하였는데, 이 사실은 『고려사』에 보인다.
비신 앞면은 원비명(原碑銘)으로 주저(周佇)가 짓고 채충순(蔡忠順)이 썼으며, 뒷면은 채충순이 짓고 썼다. 주저와 채충순에 관해서는 『고려사』 열전에 전하며, 주저는 송나라 온주(溫州)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한 문인이다.
앞면의 글씨는 자경 2㎝의 구양순체(歐陽詢體)에 기초한 해서로, 매우 정결하다. 뒷면의 글씨는 자경 2㎝ 안팎의 행서로, 구양순의 해서필법을 지니면서 왕희지(王羲之)의 행서를 시도하여 어색한 면도 없지 않으나 개성을 살린 점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