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국사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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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승려 무학자초(無學自超)의 법어 등을 수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록.
문헌/고서
저자
무학자초(無學自超)
권책수
1권 1책
내용 요약

『무학국사어록(無學國師語錄)』은 고려 말 조선 초 선종 승려인 무학자초의 어록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무학자초는 조선 태조 대 왕사를 역임하였으며, 태조와 각별한 관계를 가졌던 승려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무학자초의 법어와 글이 수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전하지 않아 간행 배경이나 책 내용은 알 수 없다.

목차
정의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승려 무학자초(無學自超)의 법어 등을 수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록.
서지 사항

『무학국사어록』은 『나려예문지』에 1권 1책이며, ‘화산소장(華山所藏)’이라고 전하고 있다. 화산은 『나려예문지』를 지은 이성의의 호이다. 『나려예문지』 등 목록집에 서명만 전할 뿐, 『무학국사어록』은 발견되지 않아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 및 편자

무학은 호이며, 법명은 자초,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시호는 묘엄존자(妙嚴尊者)이다. 1327년(충숙왕 14) 음력 9월 20일 경상도 삼기군(三岐郡)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박씨이다. 18세가 되던 해인 1344년 소지선사(小止禪師)에게서 계를 받은 뒤 용문산 혜명국사(慧明國師) 밑에서 수행하였다. 이후 진주 길상사(吉祥寺)와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행하였다. 27세가 되던 해인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대도(大都)로 가서 인도 출신 승려 지공(指空)의 제자가 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원나라에 와 있던 나옹 혜근(懶翁惠勤)을 만나 수행하여 깨달음을 인정받았다. 1356년(공민왕 5) 귀국한 뒤 혜근의 제자로 활동하였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는 태조가 왕사(王師)로 삼았고, 태조가 조선의 새 수도를 정하는 데 참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393년에는 회암사에 세워져 있던 스승인 지공과 혜근의 승탑의 탑명(塔名)을 태조로부터 받았으며, 혜근의 진영을 광명사(廣明寺)에 봉안하는 등 지공과 혜근을 현창하였다. 1397년(태조 6)에는 태조가 회암사의 지공의 승탑 근처에 자초를 위해 수탑(壽塔)을 세우게 하였다. 태종 즉위 후에도 태조의 존경을 받으며 태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회암사 등에 주석하다 1405년(태종 5) 음력 9월 11일 금강산에서 입적하였다. 1407년(태종 7) 미리 만들어 두었던 회암사의 승탑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1410년(태종 10) 회암사에 비석을 세우면서, 태종의 명으로 변계량(卞季良)이 자지홍융(慈智洪融)이라는 탑명(塔名)과 탑비문 「조선국왕사묘엄존자탑명(朝鮮國王師妙嚴尊者塔銘)」을 지었다.

저서로는 『무학국사어록(無學國師語錄)』, 『인공음(印空吟)』,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무학비결(無學祕訣)』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학국사어록』 1권 1책은 『나려예문지(羅麗藝文誌)』에 서명과 함께 화산(華山) 이성의(李聖儀)가 소장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책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조선국왕사묘엄존자탑명(朝鮮國王師妙嚴尊者塔銘)」을 비롯한 다른 사료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인공음』 1권은 이색(李穡)이 서문을 썼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자초의 저술인 『불조종파지도』는 1394년 자초가 자신이 평산 처림(平山處林)-나옹 혜근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지은 『조파도(祖派圖)』를 1688년(숙종 14) 월저 도안(月渚道安)이 증보한 것이다. 『무학비결』은 위서 논란이 있다.

참고문헌

원전

『태조실록(太祖實錄)』
「조선국왕사묘엄존자탑명(朝鮮國王師妙嚴尊者塔銘)」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6)
『나려예문지(羅麗藝文誌)』 (홍문서관,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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