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산 신효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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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중창하고 원당으로 삼은 사찰.
이칭
이칭
묵사(墨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고려시대
소재지
경기도 개풍군 중서면 토성리 광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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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효사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중창하고 원당으로 삼은 사찰이다. 고려시대 개경의 광덕산(廣德山)에 있던 사찰이다. 처음 창건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충렬왕 대 크게 중창한 뒤 원간섭기 주요 왕실 사찰 중 하나였다. 충렬왕 때에는 원 황실을 위한 원찰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진전이 마련된 사찰이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절이 있었으나 그후 폐사되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중창하고 원당으로 삼은 사찰.
내용

묵사(墨寺)라고도 하였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고려 말기에 충렬왕이 중창하고 주1으로 삼았다.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82년(충렬왕 8)에 제국대장공주가 병이 나 신효사에에 머물렀던 것인데, 이후 신효사에 충렬왕이 자주 행차하였고, 1308년 충렬왕이 세상을 떠난 곳도 신효사이다. 충렬왕 대 제국대장공주가 병이 났을 때 신효사에 여러 차례 머물렀고, 1285년 7월 13일에는 주2를 열었으며, 1296년(충렬왕 22)에는 제국대장공주가 신효사에 행차하여 연등회를 열었는데, 모든 주3을 주옥으로 치장할 정도로 화려한 행사를 열었다.

충렬왕 대 신효사에서는 제국대장공주와 원 세조의 명복을 비는 불사도 여러 차례 개최되어 신효사가 원 세조의 원찰의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원 세조가 죽자 충렬왕은 1295년 정월 16일 원 세조의 명복을 비는 법회를 열었고, 1296년 정월에는 원 세조의 대상(大祥)일에 신효사로 행차하여 분향하였으며, 1299년 정월에도 원 세조의 기일이 되자 충렬왕이 신효사에 행차하였다. 1297년 안평공주 즉,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충렬왕은 신효사에 행차하여 공주의 명복을 빌었고, 이듬해인 1298년 안평공주의 소상을 신효사에서 열었다. 이처럼 충렬왕 대 주4 이후 신효사는 왕실에서 장례 기간 동안 불사를 여는 주요 사찰 중 하나였다.

충렬왕이 세상을 떠난 뒤 1308년 충선왕은 충렬왕의 주5를 신효사에서 열었고, 충혜왕과 충혜왕비 덕녕공주진전(眞殿)이 신효사에 조성되었으며, 공민왕은 1350년과 1356년 아버지인 충숙왕의 기일재를 신효사에서 지냈다.

한편, 1342년(충혜왕 복위 3)에는 이 절의 등촉향도(燈燭香徒)들이 왕의 주6를 열었는데 왕이 직접 재의 앞자리에 앉아 참여하였다. 1349년(충정왕 1)에는 이 절의 법사 수공(修公)이 주7를 위한 계의 일종인 상주(常住)를 설치하였다. 원나라에서 출세한 고려 출신 환관인 방신우(方臣祐)가 원나라 수원황태후(壽元皇太后)가 시주한 금박 60여정(錠)으로 만든 주8을 신효사에 두고 황태후를 위해 기도하였다.

1375년(우왕 9)에는 우왕통도사에 있던 주9를 신효사에 안치한 뒤 불공을 드리기도 하였다. 고려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까지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후에 폐허가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동문선(東文選)』
『목은시고』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주석
주1

소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집. 우리말샘

주2

아귀도에 떨어진 망령을 위하여 여는 불사(佛事). 목련 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 여러 수행승에게 올린 공양에서 비롯한다. 하안거(夏安居)의 끝 날인 음력 칠월 보름을 앞뒤로 한 사흘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조상이나 부처에게 공양한다. 우리말샘

주3

등의 하나. 대오리나 쇠로 살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등잔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4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우리말샘

주5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에 드리는 불공. 우리말샘

주6

고려 시대에, 왕 등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올리던 공양. 우리말샘

주7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 우리말샘

주8

아교풀에 금박을 풀어서 쓴 불교의 경전. 우리말샘

주9

석가모니의 유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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