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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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삼화사
동해 삼화사
불교
유적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자장이 창건한 사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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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자장이 창건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옛날에는 삼공사(三公寺) 또는 흑련대(黑蓮臺)라고도 하였다.

석식영암(釋息影庵)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에 세 사람의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많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지금의 삼화사 자리에서 모의(謀議)를 하였다.

그들이 가버리자 그 지방 사람들은 그곳을 ‘삼공(三公)’이라 하였으며, 얼마 뒤 사굴산(闍堀山)의 품일(品日)이 이곳에다 절을 짓고 삼공사(三公寺)라 하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1393년(태조 2) 조선의 태조가 칙령을 내려 이 절의 이름을 문안(文案)에 기록하고 후사(後嗣)에 전하게 하면서, 신인(神人)이 절터를 알려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 옛날 삼국을 통일한 것은 부처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절 이름을 삼화사(三和寺:삼국이 화합하여 통일이 되었다는 뜻)로 고쳤다고 한다.

한편, 읍지(邑誌)에 의하면, 옛 사적(史蹟)에 이르기를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오대산을 돌면서 성적(聖蹟)을 두루 거쳐 돌아다니다가 두타산에 와서 흑련대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삼화사라고 하였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1년(642)의 일로 적혀 있다.

또, 고적(古蹟)에 의하면, 약사삼불(藥師三佛)인 백(伯) · 중(仲) · 계(季) 삼형제가 처음 서역에서 동해로 돌배[石舟]를 타고 유력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와서 맏형은 흑련(黑蓮)을 가지고 흑련대(黑蓮臺)에, 둘째는 청련(靑蓮)을 손에 가지고 청련대(靑蓮臺)에, 막내는 금련(金蓮)을 가지고 금련대(金蓮臺)에 각각 머물렀다고 하며, 이곳이 지금의 삼화사 · 지상사 · 영은사라고 전한다.

또, 약사삼불은 용을 타고 왔는데 그 용이 변하여 바위로 되었으며, 바위 뒤쪽에는 약사삼불이 앉았던 자리가 완연한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하며, 약사삼불의 손은 외적(外賊)이 잘라 땅 속에 묻었다고도 한다.

이 절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1747년(영조 23) 홍수와 사태로 인하여 무너지자 옛터에서 조금 위로 옮겨 지었고, 1820년(순조 20) 화재가 나서 1824년에 중건하였으며, 1829년 다시 불타자 정원용(鄭元容) · 이기연(李紀淵) · 이광도(李廣度) · 윤청(尹晴) 등이 서로 협력하여 중건하였다.

1869년(고종 6) 화운(華雲)덕추(德秋)가 단청을 하였고, 1873년(고종 10) 선당(禪堂)을 세웠으며, 1896년 학송(鶴松) · 창명(彰明) 등이 승당(僧堂)을 지었다.

이처럼 수차례의 화재와 중건을 거쳐오다가 1907년에는 의병(義兵)이 숙박하였다는 이유로 왜병(倭兵)들이 방화하여 대웅전 · 선당 등 200여 칸이 소실되었다. 그 이듬해 이 중 일부를 건축하였으며, 1979년 8월에 무릉계반(武陵溪盤) 위쪽으로 절을 옮겨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약사전(藥師殿) · 요사채 · 삼성각 · 육화료(六和寮) · 큰방 · 천왕문 · 일주문 등이 있으며, 문화유산으로는 삼층석탑 1기를 비롯하여 운암당상준대사부도(雲巖堂尙俊大師浮屠)와 원곡당대선사부도(元谷堂大禪師浮屠) 및 비(碑)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 안에 안치된 철불은 창건설화와 관련된 약사삼불 가운데 맏형의 불상이라고 전해지며, 삼층석탑은 높이 4.95m로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한편 삼성각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철불(鐵佛) 한 구가 있었는데, 1997년 이 철불 뒷면에서 조성 당시에 새겨진 명문(銘文) 150여 자가 발견되었다. 명문의 판독 결과 이 철불이 9세기 중엽에 조성된 노사나불(盧舍那佛)임이 밝혀졌다.

명문 가운데는 이두(吏讀)가 포함되어 있으며, 불상 조성에 관계되었던 결언(決言) 등의 승려와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등, 당시의 사회 ·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1998년 12월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절에서는 대적광전을 지어서 이 철불을 봉안하고 있다.

특히, 고려 말의 이승휴(李承休)는 이 절 가까이에 객안당(客安堂)을 짓고 이곳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으며, 10여 년 동안 불경을 독파하다가 객안당을 삼화사에 희사하고 간장암(看藏庵)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대승암(大乘庵) · 성도암(成道庵) · 은선암(隱仙庵)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명승지인 두타산성(頭陀山城) · 오십정(五十井) · 용추폭포 · 학소대(鶴沼臺) 등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집필자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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