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국(景國). 할아버지는 동지의금부사 이명중(李明中)이고, 아버지는 이의열(李義悅)이다.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홍억(洪檍)의 딸이다. 우의정 이지연(李止淵)의 아우이다.
1805년(순조 5) 유학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고, 1815년 홍문록에 등록되었다.
1822년 대사성에 이어 이조참의·대사간·한성부좌윤을 지냈으며, 1828년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31년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하였으며, 1833년 우승지·공조판서를 거쳐 1835년(헌종 1) 우참찬이 되었다. 1836년 평안도관찰사로 있으면서는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공무를 폐기한 죄로 삭직되었으나, 1837년 대사헌에 등용되었으며 예조판서로 안핵사(按覈使)를 겸하였다.
1838년 이조판서가 되고 1839년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1840년에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향리로 추방되었다. 뒤에 죄가 가중되어 고금도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철종 즉위년)에 풀려나와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어 황해도병마사·경상도관찰사·판의금부사를 거쳐, 1852년 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