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4년인 1395년에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영혼을 위무하기 위하여 국행수륙대재를 삼화사에서 설행하였는데, 이것이 삼화사 수륙재의 시초이다.
의례문인 「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된 삼화사 수륙재는 2001년 두타산삼화사국행수륙재보존회를 결성하면서 재현 및 복원에 박차를 가하였다. 의례집의 번역, 의례 연구서의 발간으로 이론적 바탕을 형성한 후, 해마다 지속적으로 설행하였다. 2013년 12월 31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과정에 삼화사 신도들이 모든 설행을 준비하고 의례 진행에 나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과정에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수륙재의 본질을 살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삼화사는 강원도에 소재하고 있지만 불교의례의 중요한 요소인 장엄, 범패, 작법무는 모두 서울 불교의례인 경제 스님들이 감당하고 있어 지역적인 색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다소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삼화사 수륙재는 시련소, 대령소, 관욕소의 3소와 사자단,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의 5단을 기본으로 하면서 방생단, 용왕단, 성욕소, 마구단 등의 단을 활용한다. 여기에 여러 번과 깃발, 지화로 장엄하며 일주문에 잡인을 금하는 방을 배치하는 등 사방에 결계한다.
삼화사 수륙재의 범패와 작법무는 조계종 어산장인 인묵 스님과 어산작법학교장인 법안 스님 등이 주도하는 경제 어산 스님들이 담당하고 있어 서울 불교의례의 일반적 양상을 보여준다. 같은 국가무형유산인 진관사 수륙재의 범패, 작법무와 지역적 연고가 같아 차별성이 뚜렷하지는 않다.
삼화사 수륙재의 재차는 다음과 같다. ① 신중작법으로 여러 신중을 청하여 삿된 기운을 몰아내고 도량을 정화한다. ② 괘불 불패이운으로 수륙도량에 모실 괘불과 불패를 이운한다. ③ 대령 시련으로 일주문 밖에 나가 모든 존재를 대접한 후 수륙도량으로 모셔온다. ④ 조전점안으로 명부에 바칠 금은전을 점안하여 헌납한다. ⑤ 쇄수결계로 수륙재를 설행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 도량을 정화하여 수륙재의 시작을 알린다.
⑥ 사자단으로 사자를 청하여 대접한 후 사방세계에 수륙재가 설행됨을 두루 알리기를 청한다. ⑦ 오로단으로 다섯 방위의 수륙도량을 공간적으로 활짝 열어 다섯 방위를 주관하는 신주와 신기를 모신다. ⑧ 상단으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청하여 공양을 올린다. ⑨ 헌다로 불보살과 모든 중생에게 차별없이 차 공양을 올린다. ⑩ 설법으로 고승대덕을 청하여 법문을 듣는다.
⑪ 중단으로 천계중, 지계중, 염마계 명군 등을 청하여 공양을 올린다. ⑫ 방생으로 죽어가는 생명까지 통합하는 의미로 생물을 방생한다. ⑬ 하단으로 모든 고혼과 중생을 위하여 법식을 베푼다. ⑭ 봉송 회향으로 수륙재에 사용한 모든 장엄을 소대에서 태우고 수륙재를 마무리 짓는다.
삼화사 수륙재는 방생이 특징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조전점안이운의식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중단에 명부의 여러 권속을 청하는 부분과 통하는 것으로 수륙재이면서도 전생의 죄를 사하는 예수재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화사 수륙재는 설행 주체인 삼화사와 의례를 감당하는 어산 스님들의 거소가 각각 동해와 서울로 달라 통합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의례의 지역적 모습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