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방촌리 석장승 제작설은 고려 때 여몽 연합군이 왜를 정벌하기 위해 발진하면서 무운장구를 위해 세웠다는 설과 서쪽을 비보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 천연두를 막기 위하여 두창장승으로 세웠다는 설 등 다양하다. 김두하는 진서대장군이라는 명문을 바탕으로 중국 황제의 권위를 빌어 호귀인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형상으로 보아 남원, 순창, 부안 일대에 남아 있는 다른 석장승과도 닮은 점이 있어 조선 후기에 민간신앙의 하나이면서도 마을 수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장승에는 진서대장군이라는 명문이 있으나 동쪽 장승에는 명문이 없다. 남장승, 여장승으로도 불리지만 두 장승의 형상이나 신체 비례가 다르고 명문의 유무도 갈려 동일 시기 제작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방촌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대동계가 주관하는 별신제를 지내는데 장승 앞에서 제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보건데 방촌리 장승은 마을의 하당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마을의 주신을 모신 곳을 상당이라 하는데 방촌에서는 마을회관 앞에서 진설-분향-제배-강신-제배-헌작-제배-독축-합동 제배-아헌-종헌-첨작-분축-소지의 순서로 유교식 제의를 거행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승을 하당, 아랫당, 거릿당으로 인식하는 사례는 전국적이다.
서쪽의 진서대장군은 높이 235㎝, 너비 54㎝, 머리길이 57㎝, 둘레 160㎝이고 동쪽 장승은 높이 197㎝, 너비 48㎝, 머리길이 92㎝, 둘레 173㎝이다. 진서대장군은 미소짓는 얼굴 형상으로 둥근 얼굴 모양에 이목구비를 새겨 평면적인 인상을 준다. 목밑부터 가슴까지 수염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에 명문이 있다. 반면 동쪽 장승은 이목구비를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우락부락한 인상을 주고 코가 상당히 크게 조각되어 있다. 두 조각의 상이한 형상으로 인해 추정 제작 시기가 엇갈린다.
장흥은 장흥군 대덕읍 잠두리에도 석장승이 남아 있고, 장흥 보림사애 884년에 건립된 보조선사영탑비에 장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장생표주’가 남아 있어 장승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방촌리 석장승은 장승 문화 발달의 징표가 되고 한국 민간신앙의 한 층위인 장승의 실상을 알려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2013년 6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