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을 줄여서 『화엄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기본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화엄종의 근본경전인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의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대승불교 초기의 중요 경전이었던 『화엄경』은 실차난타가 한역한 80권본 외에도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의 60권본과 반야(般若)의 40권본이 있다.
『화엄경』은 991년에 북송에서 개보판 대장경으로 간행되어 수입되었다. 그러다가 현종 2년에 거란의 침입이 일어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목판으로 불경을 새기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대장경은 전쟁 중에 불교신앙의 힘으로 국민을 단결시켜 국난을 타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었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판각하였다.
상하단변에 상하 간 크기는 22.9㎝ 장 크기는 28.5㎝×46.5㎝, 한 장에 23항 14자씩 배자되어 있다. 권수에는 누습으로 인한 자국과 내용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그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권말에는 양쪽 끝에 주칠이 되어 있는 권축이 붙어 있다. 송 태조 조부의 휘인 ‘경(敬)’자의 겸피휘자인 ‘경(竟)’자에 결획이 있다.
화엄경 39품 가운데 제25 십회향품의 제7회향이다. 회향이란 보살이 닦은 공덕을 남에게 나누어준다는 뜻이다. 보살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해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탐내지 말아야 하며 차별심이 없고 부귀를 탐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해인사대장경에 비해 새김이 정교하고 먹색이 진하다. 또한 매 행(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본의 17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도 보인다. 누습으로 인해 권수에 일부 탈락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귀중한 초조대장경 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