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본원경』은 약사신앙의 근본이 되는 불교 경전이다. 『약사경』의 한역은 4역 5종이 있는데, 제1역은 동진 대 『관정경』과 유송 혜간의 『약사유리광경』, 제2역은 수 대 달마급다의 『불설약사여래본원경』, 제3역은 당 대 현장의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제4역은 707년 의정의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이다. 그 내용은 동쪽에 있는 불국토인 정유리국에 머무는 약사유리광여래의 12가지 큰 서원을 설한 것이다. 『약사경』은 삼국시대 이래 현세 이익과 기복의 약사신앙과 함께 널리 유행하였다.
『약사여래본원경』(이하, 『약사경』)은 4역 5종이 알려져 있다. 당(唐) 대 주1에는 『약사경』의 한역은 모두 4역을 기록하였다. 제1역은 『관정경』 즉, 동진(東晉) 대 백시리밀다라[원종(元帝) 대(代)인 317~322년 한역]의 『불설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佛說灌頂拔除過罪生死得度經)』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송 혜간(慧簡)이 457년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약사유리광경(藥師琉璃光經)』은 『관정경』 제12권을 분할하여 따로 유행한 경으로 이본(異本)은 없다고 하였다. 제2역의 『불설약사여래본원경(佛說藥師如來本願經)』은 616년[수(隋) 대업 12년]에 달마급다(達磨笈多)에 의해 역경되었다. 제3역은 당(唐) 대 주2이 한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제4역은 당 대 707년 주3이 한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이다. 이 가운데 혜간 역본은 백시리밀다라 역본과 동일하여 경전의 목록에서는 제외되어 4종 4역이 전해진다. 4종 『약사경』의 내용 가운데 의정 역본은 권상(卷上)에 6불(佛)을 설하였고, 권하(卷下)는 주4에 대한 내용이다. 나머지 3역 『약사경』은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를 설한 부분만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내용에는 차이가 없다.
『약사경』의 내용은 동쪽에 있는 불국토인 정유리국(淨瑠璃國)에 머무는 약사유리광여래는 보살행을 행하면서 12가지 큰 서원[大願]을 세웠다. 이 약사여래의 12대원은 ①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 : 生佛平等願], ②수의작사업원[隨意作事業願 : 開曉事業願], ③득무진물원[得無盡物願 : 無盡資生願], ④안립대승원[安立大乘願 : 安立大道願], ⑤구계청정원[具戒淸淨願, 具三聚淨戒願 : 戒行清淨願], ⑥근완구병고원[根完救病苦願 : 諸根具足願], ⑦제병안락원(除病安樂願), ⑧전녀득불원[轉女得佛願 : 轉女成男願], ⑨안립정견원[安立正見願 : 回邪歸正願], ⑩제난해탈원[除難解脫願 : 解脫憂苦願], ⑪음식포족법미안락원[飮食飽足法味安樂願 : 得妙飲食願], ⑫의복일체장엄구족원[衣服一切莊嚴具足願 : 得妙衣具願]이다.
우리나라의 『약사경』 수용은 삼국시대 이래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약사경』 한역의 제1역은 『관정경』 즉 동진(東晉) 대 백시리밀다라가 317322년 사이에 한역한 『불설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이고, 제2역 『약사여래본원경』은 수 대업 12년인 616년에 달마급다에 의해 역경되었다. 고구려의 혜관은 수의 길장에게 수학하고 625년경 왜로 가서 승정이 되었는데, 이 시기는 제2역의 수입이나 활용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백제에서는 겸익(謙益)이 526년(성왕 4)에 인도 구법 후 범본 아비담장과 율문을 가지고 배달다삼장과 함께 귀국하여 이를 번역하였다. 발정(發正)은 양 천감[天監, 502519] 연간에 양나라에 가서 30여 년 구법하였다. 또한 541년(성왕 19)에는 양에 사신을 보내 『열반경』 등 경전과 장소를 구한 바 있다. 이러한 여러 교류 사례를 통하여 제1역과 제2역의 『약사경』은 수입될 수 있었을 법하다. 달마급다 역본은 삼국의 불교 교류 특히 승려의 구법 활동을 통하여 전승되었겠지만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제3역인 현장 역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의 수입은 신라의 신방, 도증, 승장 등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현장의 역장에서 활동하였고, 신방은 『약사경소』를 쓴 정매와 함께 활동하였다. 유식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는 도증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신라 대현의 『약사경고적기』는 정매의 주석서를 인용하고 있어 비슷한 시기 나당 교류 특히 신라 입당구법승의 역할을 추정할 수 있다.
제4역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은 의정 역인데, 신라 승장은 의정의 역장에서 증의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현장 역과 의정 역의 『약사경』에 대한 역경 상황을 잘 알았을 것이다. 제4역은 706년 이후 더 나아가 730년 『개원석교록』에 의한 사본대장경에 포함되어 수용되었을 것이다. 『약사경』 가운데 삼국시대 이래 주된 유통본은 달마급다 역본, 현장 역본, 의정 역본이다.
『약사경』의 주석서로는 제1역의 주석서는 확인되지 않고, 제2역 달마급다 역의 주석서로는 혜관의 『약사경소』가 확인되며, 유통본으로는 『대정신수대장경』 권85에 영본이 수록되어 있다. 제3역 현장 역에 대해서는 고려 전기 1090년에 편찬된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과 일본의 『동역전등목록』에는 정매(靖邁), 도륜, 경흥, 대현, 신웅, 지개(智開), 원경(圓鏡), 극태(極太), 규기, 신태(神泰), 백제의영(百濟義榮), 일본의 선주(善珠) 등이 지은 8종의 『약사경』 주석서가 확인된다. 이 가운데 신라 대현의 『약사경고적기』와 일본 선주(善珠)의 『약사경소』가 현전한다. 제4역 의정 역본에 대한 전체 주석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일본 선주의 『본원약사경초』에서 다수 언급하였고, 영요(靈耀)의 『약사경직해』에서도 의정 역본을 언급하였지만 내용에 대한 주석은 아니다. 결국 이상의 4역 『약사경』은 일부 약사여래의 본원과 주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유사한 것으로 현장 역본을 중심으로 주석되어 활용되었고, 보충적으로 의정 역의 신주와 일부 내용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