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신앙은 불교의 대표적 내세 신앙으로서 윤회의 쳇바퀴를 도는 중생을 제도하고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믿는 것이다.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의 크시티가르바(Ksitigarbha)를 한자어로 옮긴 것으로 크시티는 땅, 가르바는 모태이며 모든 것을 품은 무한한 대지를 가리킨다. 지장보살은 석가불 이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지옥 · 아귀 · 주1 · 주2 · 인간 · 천상의 6도 윤회를 하는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사후 더 나은 다음 세상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지장보살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고 내세의 복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천도(薦度)의 역할 외에 자신의 행위의 공덕을 부모 등 망자에게 돌려 그 명복을 비는 주3도 지장보살의 권능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에 대해 자비(慈悲)를 주4한 주5’의 상징이었고, 주6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하기 위해 주7 등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지장신앙은 말법 시대 중생의 주8 참회와 주9 소멸을 강조하며, 소의 경전으로는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의 3부작이 있다. 지장보살은 천관을 쓰고 왼손에는 연꽃을 들었으며 오른손은 주10의 형태를 짓거나 보주(寶珠)를 든 모습을 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연명지장경(延命地藏經)』에 의거해 삭발한 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여의주를 든 지장보살의 형상이 많다. 또 조선 중기 이후에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를 각각 관장하는 천장(天藏) · 지지(持地) · 지장의 삼장(三藏)보살로 신앙 대상을 점차 확대해 갔다.
지장신앙은 중국에서는 ‘지장교(地藏敎)’라고도 칭해졌고, 수 · 당대 이후 널리 퍼졌다. 한국에서도 지장보살의 본원력에 의해 부모와 조상 등의 사후 구원을 기원하는 지장신앙이 일찍부터 수용되었다. 신라 진평왕 때 중국에 유학 갔다가 온 원광(圓光, 542~640)이 청도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결사 조직의 일종인 점찰보(占察寶)를 만든 것이 지장신앙과 관련한 최초의 기록이다. 여기서는 업보를 점쳐서 계에 의지해 그 죄를 멸하고 참회하는 ‘귀계멸참(歸戒滅懺)’의 점찰법이 시행되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비구니 지혜(智惠)가 안흥사(安興寺)에서 매해 봄과 가을에 열흘 동안 선남선녀를 모아 일체중생의 구제를 위한 점찰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7세기 중반에 삼장법사 주11이 17년간의 인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 밑에서 역경 사업에 참여하게 된 신라 유학승 신방(神昉)은 한역된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의 서문을 썼다. 이 글에서는 지장보살의 십륜(十輪)이 중생의 열 가지 악업(惡業)을 없애고 구제해 줌을 강조하고 현장의 『십륜경』 번역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어 8세기에 활동했던 진표(眞表)는 스승 숭제(崇濟)에게 『점찰선악업보경』을 전해 받고 참회와 정진을 거듭한 끝에 지장보살을 친견하였고, 또 미륵보살로부터는 나무로 된 간자(簡子) 189개를 받았다고 한다. 진표는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했고 나무 간자를 활용한 점찰법회를 열고 이를 유행시켰다. 이처럼 신라시대의 지장신앙은 『십륜경』, 『점찰경』에 입각하여 참회와 수행을 기본 형태로 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주12에서 벗어나려는 대중의 바람이 지장신앙으로 발현되었다. 지옥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쌓은 행위의 업(業), 주13의 원리에 따라서 죄지은 이가 심판의 결과로 가는 곳이지만, 죄업의 주14를 다하면 벗어날 수 있었다. 관음보살이 현세의 고통을 없애 주고 복락을 주는 보살이라면 지장보살은 사후 지옥의 고통을 구제해 주고 더 나은 길로 안내하는 명부의 구세주로 자리 잡았다. 한편 고려시대에 속리사(俗離寺)와 도솔원(兜率院)에서 열린 점찰법회는 내세의 영혼 구제라는 기본 성격에 더하여 소재도량(消災道場)처럼 국가나 왕실의 재액 소멸과 복을 기원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무엇보다도 지장신앙은 아미타신앙과 결합하여 6도 윤회를 벗어나 정토 왕생을 기원하는 복합적 형태로 나타났다. 참회와 추선을 통해 망자가 지옥을 벗어나서 바로 정토로 왕생하는 구조였다. 고려 중기의 수정결사(水精結社)에서는 점찰법회를 열어 참회 수행을 했는데 신라 진표의 점찰법회에서 미륵보살을 높인 것과는 달리 아미타 정토를 염원했다. 고려 후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고려 불화에서는 지장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등장하거나 관음보살과 함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서방 극락정토로의 길을 안내하는 지장보살의 역할이 확고해졌음을 보여준다.
불교는 동아시아에서 업과 인과응보의 윤회, 그리고 정토로 상징되는 내세로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불교 전통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왕실에서 서민까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지장보살은 시왕(十王)과 함께 사후의 심판을 주관하는 존재였고, 망자의 명복을 비는 사십구재(四十九齋) 등 불교 재회는 부모에 대한 효의 관념과 결합하여 유력한 구원 방안으로 받아들여졌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지옥의 구제자인 지장이 시왕 · 명부신앙과 결합하는 경전적 근거가 되었고, 지장보살을 중앙에 두고 시왕을 좌우에 배치하는 지장시왕의 조형이 일반화되었다.
조선에서도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영험 있는 보살로서 지장에 대한 신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웬만한 사찰에는 지장전(地藏殿)이나 사후 심판을 받는 명부를 조형한 명부전(冥府殿)이 세워졌고 지장보살과 시왕의 상과 불화가 조성되었다. 이들 공간은 사후의 명복을 빌고 좋은 곳으로 가기를 염원하는, 내세를 위한 발원의 장이었다. 지장신앙의 근거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도 빈번히 간행되었고 한글 언해본이 나왔을 정도로 지장신앙은 대중적 수요가 컸다. 19세기 「동학사 지장계서(東鶴寺地藏稧序)」를 보면 지장보살을 예참하고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행과 이타행이 동시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십재일(十齋日)의 하나로서 매년 7월 24일에 행하는 지장재(地藏齋)나 사십구재에서 지장보살의 높은 권위는 지장신앙의 한국적 전개 과정과 특색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