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은 관음보살과 함께 우리나라 2대 보살의 하나로, ‘위로는 부처의 도를 구하며,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를 실천하며, 천(天) · 인(人) · 아수라(阿修羅) · 축생(畜生) · 아귀(餓鬼) · 지옥(地獄) 등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기 위해 성불(成佛)마저도 포기한 대비(大悲)의 보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750년 경에 조성된 석굴암(石窟庵) 감실(龕室) 안에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안치되어 있어 8세기 중엽경 지장신앙에 의한 조상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석굴암 지장보살상은 승형(僧形)의 머리에 오른손은 가슴부근으로 들어 손바닥을 앞으로 하여 손가락을 맞대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에 놓고 보주(寶珠)를 들었는데, 감실 내에 소규모의 상으로 봉안한 것으로 보아 아직은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지장보살은 아미타정토신앙과 결합되면서 다수 제작되었다. 법주사의 경내 왼쪽의 거대한 바위에는 미륵불과 함께 승형의 머리에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오른쪽 다리는 내리고 왼쪽 다리는 엇비슷하게 올려놓은 유희좌(遊戱座)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장보살상이 조각되었다.
이 시기에는 승형의 지장보살상과 함께 머리에 두건을 쓴 두건지장상도 다수 조성되었는데,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001년 지정), 동국대박물관 소장 청동지장보살좌상, 동국대박물관 소장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의 우협시 지장보살상은 어깨까지 두건을 쓴 형상이어서 당시에는 이러한 형태가 일반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아미타불의 협시로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상이 배치되는 아미타삼존상이 다수 조성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 초기로 이어져서 강진 무위사 아미타삼존불상(보물, 2001년 지정)을 비롯한 여러 예에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장보살은 추선공덕(追善功德)과 영가천도(靈駕薦度)를 위한 명부전의 주존으로 봉안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작품이 전하는데, 대부분 승형에 불의(佛衣)를 입은 모습이다.
고려시대의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001년 지정) 및 조선후기의 여수 흥국사 지장보살좌상(보물, 2008년 지정), 봉화 청량사 지장보살좌상(보물, 2010년 지정), 진주 청곡사 지장보살좌상(보물, 2010년 지정) 등 많은 작품들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