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찰보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신라시대에 있었던 보(寶).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신라시대에 있었던 보(寶).
내용

현전하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나라 보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 진평왕 때의 고승이었던 원광(圓光)이 가서사(嘉栖寺)에다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다.

설치목적 또한 분명하지 않지만, 점찰법회를 운영하기 위한 재원으로서의 기금을 마련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원광이 설치한 점찰보에 어느 정도의 기금이 모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한 청신녀(淸信女 : 女信徒)가 이 곳에 전답 100결(結)을 시납하였으며 그것이 고려 후기까지도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원광의 점찰보는 이 100결의 전답을 기금의 일부로 하고, 이를 경작하여 얻어지는 생산물을 법회의 운영자금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점찰법회(占察法會)와 진표(眞表)의 교법(敎法)연구」(김영태, 『불교학보』 9, 1972)
「삼국유사에 나타난 소유권사례(所有權事例)에 관한 고찰」(김삼수, 『숙명여자대학교논문집』 19, 1979)
「원광(圓光)의 보살계사상」(정병조, 『한국고대문화와 린접문화와의 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