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전하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나라 보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 진평왕 때의 고승이었던 원광(圓光)이 가서사(嘉栖寺)에다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다.
설치목적 또한 분명하지 않지만, 점찰법회를 운영하기 위한 재원으로서의 기금을 마련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원광이 설치한 점찰보에 어느 정도의 기금이 모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한 청신녀(淸信女 : 女信徒)가 이 곳에 전답 100결(結)을 시납하였으며 그것이 고려 후기까지도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원광의 점찰보는 이 100결의 전답을 기금의 일부로 하고, 이를 경작하여 얻어지는 생산물을 법회의 운영자금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