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이 끝난 뒤 고려와 원나라는 인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여 몽고의 풍습이 고려에도 전래되었지만, 고려의 풍습도 원나라에 전파되었다.
즉, 원나라 왕실과 귀족들은 후궁·궁녀·시첩·시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고려의 처녀를 자주 요구하였고, 군사들도 집단적으로 혼인하기 위하여 고려 처녀들을 많이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에서는 결혼도감·과부처녀추고도감 등을 설치하고 국내의 많은 처녀와 과부들을 원나라에 보냈는데, 이들이 원나라에 들어가 왕실 및 일반 사회에 고려의 풍습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고려의 풍습 가운데, 특히 의복·신발·모자 등의 복식과 만두·떡 등의 음식, 아청(鴉靑 : 검은색을 띤 푸른빛) 등의 기물은 급속도로 전파되었는데 이를 총칭하여 고려양이라 하였다. 그 유풍이 오늘날까지 남아 지금도 몽고족 사회에서는 고려만두(高麗饅頭)·고려병(高麗餠)·고려아청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