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조상들을 지옥에서 천도(薦度)하여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데 대한 공덕이 열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죽은 부모를 천도하는 지장재(地藏齋) 의식과 사찰에 보이는 명부전(冥府殿)이 바로 이 경전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1) 보물 제933호(卷上 · 中 · 下): 3권 1책. 목판본. 조선 세종 때 왕실에서 주관하여 간행한 지장경이다. 이 경은 당(唐)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것으로, 지장보살이 온갖 방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기에 노력하여, 죄를 짓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해탈하게 하려고 세운 서원을 13품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 판본은 왕실에서 태종 · 원경왕후(元敬王后) ·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하였다. 간행 시기는 세종의 막내아들이 영응대군(永膺大君)의 군호(君號)를 받은 1447년(세종 29)에서 세종이 죽은 1450년 사이로 보이며, 간행은 영응대군의 궁방(宮房)에서 주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체재는 5행(行)씩 간격을 둔 절첩형(折帖形) 판식을 지니고 있으나, 장정은 선장(線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보물 제1011호: 3권 1책. 목판본. 1453년(단종 1) 화암사(花巖寺)에서 간행하였다. 이 판본은 사찰에서 시주를 모아 판각한 전형적인 사찰판으로 비구 혜준(惠俊)의 화주(化主)로부터 부사정(副司正) 구현(具顯) 등에게 시주를 받아 공암(空菴)이 쓰고 대선사 의명(義明)이 각수(刻手)로 참여하였다. 현재 인쇄 상태로 보아 초쇄본으로 볼 수 있다. (재)아단문고에 있다.
(3) 보물 제966호(卷上 · 中 · 下): 3권 1책. 목판본. 1469년(예종 1)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貞懿公主)가 간행하였다. 김수온(金守溫)의 발문에 의하면 정의공주가 그의 남편 안맹담(安孟聃)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수륙의문(水陸儀文)」 · 「결수문(結手文)」 · 「소미타참(小彌陀懺)」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함께 간행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때 새긴 목판은 원찰(願刹)인 삼각산 도성암(道成庵)에 봉안하였다. 발문은 김수온의 친필을 그대로 새긴 것이고, 각수는 당시 이름이 알려진 장말동(張末同) · 권돈일(權頓一) · 고말종(高末終) 등 일류 각수가 관여하였다. 권머리에 변상도(變相圖) · 축원패(祝願牌) · 신중상(神衆像)이 묘사되어 있는데, 본문의 판각과 더불어 솜씨가 뛰어난 판본이다. 관문사에 있다.
(4) 보물 제1104호(卷上 · 中 · 下): 3권 1책. 목판본. 1474년(성종 5) 세조 비인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에 의하여 견성사(見性寺)에서 판각하였다. 이 판본은 1474년 정희대왕대비가 이 해에 죽은 성종 비인 공혜왕후(恭惠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내수사의 천포(泉布)를 내려 광평대군의 부인 신씨[廣平大君夫人申氏]의 원당(願堂)인 견성사에서 판각한 것이다. 신씨 부인과 그 아들 영순군(永順君)에 의하여 세조와 대비의 수복과 광평대군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준비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던 것을 대비의 도움으로 이때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 때 왕실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당시 일류 각수인 고말종 · 김천동(金千同) 등이 참여하였고, 대비 이하 대군 · 공주 등 왕실과 신미(信眉) · 학열(學悅) · 학조(學祖) 등 당시의 고승이 참여하였다.
이 책은 몇 장의 보각이 있는데 권상(卷上)의 기록에 의하면 1485년에 보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것을 새긴 목판은 10년 만에 결판(缺板)이 생겼고, 이 책을 인쇄한 시기는 이보다 훨씬 후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후쇄본이나 조선시대 왕실에서 정성껏 간행된 판본으로 당시의 지장신앙과 왕실의 불교 신앙 형태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호림박물관에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조선시대 판본은 1462년 간경도감본과 왕실발원본은 물론 1453년 전라도 고산 화암사간본과 같은 사찰판본들이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간행한 『지장보살본원경』 판본은 29종이며, 이 중 간행년이 확실한 것은 25종이다. 시기별 분포를 살펴보면 15세기 판본이 9건, 16세기 판본이 6건, 17세기가 5건, 18세기가 5건, 19세기가 2건, 연대 미상이 2건이다. 15~16세기 판본이 전체 판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 이후에는 점차 개판 횟수가 줄어든 것으로 볼 때 『지장보살본원경』은 조선 전기에 더욱 빈번히 판각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5세기 판본은 대부분 망자의 명복과 영가천도를 위해 왕실에서 발원한 경전이 많은데 이 중에는 『지장보살본원경』이 포함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들 중 1469년과 1474년 판본만이 새로 판각한 것이고 나머지는 기존의 판목에서 후쇄한 것이다. 이 외에도 1462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경전 중에도 『지장보살본원경』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