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주 ()

지장보살본원경
지장보살본원경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둘째 딸인 공주.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77년(성종 8)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훈민정음 창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의공주는 조선 제4대 세종의 둘째 딸이다.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세종이 즉위하기 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477년(성종 8)에 사망했다. 안맹담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역산(曆算)에 능하였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을 잘 풀어서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불교에 조예가 있어서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를 중창하였다.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다.

정의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둘째 딸인 공주.
개설

정의공주는 조선 4대 국왕 세종(世宗)의 차녀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세종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참여하였고, 『지장보살 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간행하였다.

생애

정의공주(貞懿公主, ?∼1477)는 세종이 즉위 전에 출생하였으나,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오빠 문종(文宗)이 1414년(태종 14)에 출생하였고, 동생 세조(世祖)가 1417년(태종 17)에 태어난 사실에 비추어 1415년(태종 15)에서1416년(태종 16)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1428년(세종 10)에 정의공주(貞懿公主)에 봉해졌고, 안맹담(安孟聃)과 가례(嘉禮)를 치렀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1428년(세종 10)에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가 1432년(세종 14)에 연창위(延昌尉)로 개봉되었다.

정의공주는 연창위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안여달(安如獺) · 안온천(安溫泉) · 안상계(安桑鷄) · 안빈세(安貧世)이고, 1녀는 정광조(鄭光祖)의 부인, 2녀는 한치례(韓致禮)의 부인이다. 한치례는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아들로, 덕종소혜왕후의 동생이다. 1462년(세조 8) 12월에 연창위가 사망하자 2남 안온천이 시묘살이 중 22세로 졸하였고, 1477년(성종 8) 2월에 정의공주가 사망하자 4남 안빈세도 시묘살이 중 32세로 사망하였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세종이 중국에서 사온 안장을 손수 고치려고 칼로 깎다가 칼끝이 다리에 박히자 공주는 술을 만들고 난 지게미[醋粕]를 데워 상처에 붙여 부기가 빠져나가게 한 후 자석(指南鐵)을 가지고 부러진 칼끝을 빼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안맹담은 계유정난(癸酉靖難)에 협조하여 성록대부(成祿大夫)로 가자(加資)되었고,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1457년(세조 3) 수록대부(綏祿大夫)에 가자되었다. 이러한 남편의 공훈에 힘입어 정의공주는 세조로부터 노비와 전토 등을 받았다. 또한 성종은 공주의 건강이 좋지 않자 4남 안빈세를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하였고, 왕비와 함께 친히 문병을 가기도 하였다. 정의공주는 1477년(성종 8)에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웠는데, 역산(曆算)에 능하였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이 잘 풀리지 않아 여러 대군들과 공주에게 풀어보도록 하였는데, 공주가 이를 풀어 세종의 칭찬을 듣고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세종이 창제된 훈민정음을 공주에게 주어 민간에서 시험해 보도록 하자, 공주는 그 결과를 세종께 바쳤다고 전해진다.

정의공주는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 연창위 안맹담과 함께 세종 승하 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文殊寺)를 중창하였다. 안맹담도 평소 불경을 읽고, 살생을 싫어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는 등 공주 부부는 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공주는 1469년(예종 1)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죽은 연창위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정의공주 간행 『지장보살본원경』은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묘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1에 있다. 연창위 안맹담의 무덤과 함께 있으며, 묘역 앞에 ‘연창위 안맹담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
『세종대왕과 친인척』3(지두환, 역사문화, 2008)
「연창위 안맹담과 종가의 변천과정」(안국승, 『경기향토사학』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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