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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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변상도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변상도
회화
개념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그림.
목차
정의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그림.
내용

변상도는 불교의 교리에 입각하여 표현되는 종교화이다. 즉 진리의 내용을 변화하여 나타낸 것이므로 변상이라 하며, 도상적 성격(圖相的性格)을 지니므로 변상도라고 한다.

대체로 변상도는 석가모니의 전생을 묘사한 본생도(本生圖)와 현생(現生)의 전기를 담은 불전도(佛傳圖) 그리고 정토(淨土)의 장엄도(莊嚴圖)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변상도는 이들과 관련된 조각이나 회화 등의 조형체(造形體)를 포괄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변상도는 교훈적 의미를 지닌 석가모니 전생의 설화와 사상적 내용을 지닌 여러 형태의 조형물을 뜻한다. 이와 같은 변상도의 출현은 석가모니의 생존 당시부터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열반 뒤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변상이 불교 조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기는 불탑(佛塔)의 표면을 장식하는 고대 인도의 여러 탑과 탑문(塔門) 등에서 그 형태를 추출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앞선 것은 이미 서기전 수 세기에 속하는 것도 있다. 고대 인도 사회의 사상과 역사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변상의 종류로는 석조 조각에 나타난 이들 부조상(浮彫像)의 형태와 일반 불교 회화로 구별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전자보다는 불교 회화의 형태에 속하는 것이 많다. 회화 형태의 변상도에는 벽화·탱화(幀畫)·사경화(寫經畫)·경판화(經板畫), 심지어는 단청(丹靑)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석탑 등에 나타난 변상으로서의 부조상은 인도에서와 같은 다양한 내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본생담이나 부처의 전기를 담은 변상이 아니라, 단순히 불탑에 대한 신앙적 표현이나 외호적 또는 장엄적 기능으로서의 부조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만,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82년 국보로 지정된 보협인석탑과 같이 보시 공양(布施供養)의 본생 설화 등을 표현하고 있는 독특한 고려시대의 석탑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특수한 예에 속한다.

불화 변상의 경우에는 고려 중기 이전의 것은 전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속하는 상당수의 작품이 있고, 조선시대의 것은 더욱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연관 속에 이룩되고 있다.

불보살을 그 주제로 하는 존상화(尊像畫)를 비롯하여 제자상인 나한상(羅漢像), 사회 풍속까지도 반영하고 있는 감로탱(甘露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어 있다.

이들 또한 채색을 사용하는 대형 불화, 금이나 은으로 그리게 되는 사경 변상(寫經變相), 판화적 성격을 지닌 경전 변상(經典變相)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들 변상도의 특징은 장황한 경전의 내용이나 심오한 교리적 의미를 한 폭의 그림 또는 한 장의 경권 변상 속에 요약하여 함축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요약된 그림을 통하여 보다 광대한 경전의 세계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는 데에 변상도가 지닌 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변상도는 불경의 내용을 의지하여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불경의 중심이 되는 불보살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불경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내는 수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 교화라고 하는 제1차 목적을 전제로 하여 제작되는 것이므로 경전 변상이 중심이 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변상이라고 하면 으레 목판 경전의 판화를 연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성을 지니는 경전의 판화가 대중화된 다음으로는 사경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상의 그림은 회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표현 위주의 도상적 성격에 치중되고 있다. 그것은 경전의 내용이나 교리적 성격을 제한된 공간 속에 최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변상도 특유의 성격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리고 경전의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서 그림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등장하는 불보살이나 인물 또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 인물의 표현도 여러 형태로 전개된다.

변상도의 종류를 내용별로 분류한다면 여러 경전의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들을 등장 인물에 의하여 살펴보면, 아미타불변상도·비로자나불변상도(毘盧遮那佛變相圖)·석가모니불변상도(釋迦牟尼佛變相圖)·약사여래변상도·관음보살변상도·지장보살변상도(地藏菩薩變相圖) 등 매우 다양하다. 이밖에도 사천왕(四天王)이나 천부중(天部衆) 등 불보살을 외호해 주거나 장엄해주 는 신중(神衆)을 묘사한 변상도도 있다.

대체로 이들은 불전(佛殿)이나 석굴 사원의 내부를 장식하는 벽화나 탱화 또는 단청 등에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 나라 변상도의 중심을 이루는 경전 변상도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법화경≫·≪화엄경≫·≪열반경≫·≪아미타경≫·≪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무량수경≫·≪유마경 維摩經≫·≪보은경 報恩經≫·≪능엄경 楞嚴經≫·≪미륵경≫·≪약사경 藥師經≫·≪금광명경 金光明經≫·≪금강경≫·≪부모은중경≫ 등의 변상도가 많다. 이 중 특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법화경변상도·화엄경변상도·부모은중경변상도 등이다.

(1) 신라시대현존하는 신라시대의 변상도는 매우 희소하다. 다만, 문헌상으로는 상당수의 불보살, 그리고 신중들이 보인다. 즉, 진평왕 때 안흥사(安興寺)의 비구니 지혜(智惠)에 의하여 이룩된 53불(佛)·육류성중(六類聖衆)과 여러 천신(天神)·오악신군(五岳神君), 흥륜사(興輪寺) 오당(吳堂)의 금화(金畫), 분황사의 천수대비(千手大悲), 사천왕사의 오방신(五方神), 흥륜사의 보현보살벽화, 남항사(南巷寺)의 탱화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등이 그것이다.

대체로 이들의 성격은 신라시대에 이룩되었던 불화적 성격을 지닌 변상으로 짐작되지만 현존하는 것은 없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것은 백지 묵서(白紙墨書)의 화엄경사경과 함께 이에 소속된 것으로 추정되는 변상도가 발견된 것이 고작이다. 이것은 매우 귀중한 신라의 육필(肉筆) 사경인 동시에 경전 변상이다.

사경은 간기를 지니고 있어 이 시대 사경 의식(寫經儀式)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완형의 그림은 아니고 조각 그림이지만 당시 변상도의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아직까지 신라시대의 목판 변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국사 석가탑 발견의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발견이라든지, 앞서 언급한 화엄경변상 등의 존재 사실로 보아 이들 사경 변상 외에 목판 변상도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것은 후대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경전변상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단순한 장식화(裝飾畫)의 성격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변상은 이와 같은 백지 묵서경의 변상 그림을 바탕으로 하여 이룩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2) 고 려고려의 변상도는 문헌 기록에서뿐 아니라 현존 예에 있어서도 상당수에 달한다. 먼저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는 흥왕사(興王寺)의 벽화,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의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문선≫에는 1325년(충숙왕 12년) 강화 선원사(禪源寺) 비로전(毘盧殿)에 40신중을 그렸고, 1327년 다시 55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천신 등의 벽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관음보살이라든지 육아백상도(六牙白象圖) 등이 다양하게 보이고 있다.

불화적 성격을 지닌 대형의 존상화로서의 이들 변상도 외에 이 시대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금은자(金銀字)의 사경변상이다. 특히, 국가 기관으로서의 사경원(寫經院)이나 금자원(金字院)이 있어서 금은자대장경을 간행하였으며 아울러 사경 변상을 제작하였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중요 변상으로는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祖師堂) 벽화를 들 수 있다. 이는 14세기경의 작품으로 제석(帝釋)·범천(梵天)과 사천왕 등 6폭의 그림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벽화 변상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해당하는 상당수의 고려의 변상 그림이 일본에 현존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은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장보살시왕도(地藏菩薩十王圖)·관음보살·석가여래 또는 여러 천신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사경 변상으로는 일본 문화청(文化廳) 소장의 감지금니대보적경변상(紺紙金泥大寶積經變相)이 주목된다. 이는 1006년(목종 9년) 목종의 모후인 천추태후(千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다.

이 변상도는 세로 29.2㎝, 가로 45.2㎝이며 결계(結界) 내부에는 3구의 산화보살공양도(散華菩薩供養圖)를 유려한 금선으로 나타내었다. 뒷배경으로는 화면 가득히 꽃과 구름을 묘사하였다.

이와 함께 1275년(충렬왕 1년)에 간행된 ≪불공견색신변진언경 不空羂索神變眞言經≫의 변상 역시 감지금니의 신장 그림을 나타내고 있다. 크기는 세로 26㎝, 가로 36㎝이다.

또 이것과 같은 형식인 ≪문수사리문보리경 文殊師利問菩提經≫의 변상은 1276년의 제작이다. 감지금니에 세로 29.2㎝, 가로 44.3㎝로서 ≪불공견색신변진언경≫과 같은 유의 신장변상이다.

≪화엄경≫의 변상으로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화엄경보현행원품(華嚴經普賢行願品) 제31권 변상도,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변상도가 주목된다. 전자는 1337년(충숙왕 복위 6년) 제작된 감지금니로서 세로 15.8㎝, 가로 35.6㎝이다. 그리고 후자는 1390년(공양왕 2년) 간행의 백지금니(白紙金泥) 변상으로서 세로 32㎝, 가로 30㎝이다.

이들은 종이의 질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 면에 있어서는 모두 보현행원의 경전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14세기 고려 변상도의 경향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것이다.

≪법화경≫의 변상으로는 1294년 간행된 일본에 있는 ≪법화경≫ 제1권 변상, 1315년의 제5권 변상, 1340년(충혜왕 복위 1년)의 제2권 변상, 1353년(공민왕 2년)의 제7권 변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여러 권의 법화경변상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감지에 금니의 세선으로 처리된 고려시대의 아름다운 사경 변상이다. 이는 ≪화엄경≫ 등과 함께 가장 널리 보급된 경전으로서 현존 작품 역시 가장 풍부하다.

이와 함께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감지금니범망보살계경(紺紙金泥梵網菩薩戒經)의 변상이 주목된다. 이는 세로 16.3㎝, 가로 10.4㎝ 크기의 권수 변상(卷首變相)을 금니로 그렸다.

경문은 정교한 사경체의 은니(銀泥)에 절첩본(折帖本)이다. 찬란한 금선으로 처리된 변상은 설법의 장면과 함께 그 좌측에 경전의 내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간기는 없지만 14세기경의 고려 작품으로 추정되는 수작이다.

또한 경기도 안성시청원사(淸源寺) 본존불의 복장(腹藏) 유품 가운데 감지은니화엄경 권41의 신장변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세로 32.5㎝, 가로 12.3㎝로서 과장된 근육이라든지 나신(裸身)의 천의(天衣) 등은 전형적인 신장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그 형식은 앞의 ≪불공견색신변진언경≫이나 ≪문수사리문보리경≫의 변상과 동일하다.

이들 외에 금강경변상 또는 법화경 서사보탑(書寫寶塔)의 변상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 감지에 화려한 금니로써 제작하여 고려 귀족들의 불심과 취미에 영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판 변상으로는 소형의 다라니경변상에서부터 대형의 화엄경변상에 이르기까지 풍부하게 제작되었다. 먼저 고려본으로서는 ≪보협인다라니경≫ 권수 변상을 들 수 있다. 변상의 크기는 세로 53㎝, 가로 10㎝의 매우 작은 그림이다.

하지만 1007년(목종 10년)에 새긴 주목되는 변상도이다. 개성 근교의 총지사(摠持寺)에서 개판되어 납탑공양(納塔供養)되었다가 이후에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변상의 내용은 부처님이 한 바라문의 공양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생긴 여러 장면을 묘사하였다.

조명기(趙明基) 소장인 마리지천경(摩利支天經)의 변상 역시 앞의 다라니경에 준하는 소경(小經)이다. 이 역시 권수에 마리지천의 변상을 단독으로 나타내어 그 형상을 알 수 있다. 1216년(고종 3년) 간행의 간기를 지닌 귀중한 자료이다.

이와 함께 해인사 소장의 ≪불설예수시왕생칠경 佛說預修十王生七經≫의 변상은 석가모니와 협시보살(脇侍菩薩), 천룡팔부(天龍八部), 명부(冥府)의 시왕(十王), 사자(使者) 등 상당수의 인물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 제작은 1246년 정안(鄭晏)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고려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경판 변상은 화엄경변상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화엄경변상은 3본(本) ≪화엄경≫ 가운데 60권본의 구화엄(舊華嚴)과 80권본의 신화엄(新華嚴)이다. 이들 가운데 해인사 소장본의 구화엄은 산판(散板)으로 12매의 변상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신화엄은 80매 전권이 보존되어 있다.

대체로 이들은 화엄경 매권의 권수를 장식하는 권수 변상으로서 각기 권수에 맞추어 60매와 80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양본은 그 체재가 거의 같으며 그 형식은 이 시대에 성행한 사경 변상과 동일하다. 화면의 우측에는 설법주 비로자나불과 제대보살(諸大菩薩)을, 좌측의 부분에는 각 권 속의 중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근래 새로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된 80권본 ≪화엄경≫ 제36권에 수록된 변상 역시 해인사본과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변상도의 내용은 해인사본과 동일하지만 그 크기와 판식은 서로 다르다.

고려시대의 변상도 중에는 삽화 형식이 특수한 경우가 있다. 이들을 열거하면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된 어제비장전(御製祕藏詮) 변상과 1363년 간행된 금강경변상, 해인사 소장 산판 ≪화엄경≫ 속에 들어 있는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의 제신 변상(諸神變相)과 시왕경(十王經)의 변상 등이다. 또한 해인사의 대형 아미타목판변상도 이 시대의 주목되는 변상으로 알려져 있다.

(3) 조 선조선시대의 변상도는 고려의 변상도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 내용 면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고려시대 성행한 사경 변상의 제작이 조선시대에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재료 면에 있어서도 백지(白紙)·장지(壯紙) 등 다양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내소사(來蘇寺) 소장의 백지 묵서의 ≪법화경≫은 금니의 변상도를 지니고 있다. 간행 연대는 1415년(태종 15년)이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40권본 화엄경변상은 고려시대 사경 양식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식 면에 있어서는 간략화되고 있다. 감지에 금니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구도에 있어서는 큰 변화를 가져온 1728년(영조 4년)의 작품이다.

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법화경≫ 제7권 변상 역시 백지에 묵서경이지만 변상만은 금니로 이룩되었다. 또,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 소장의 감지은니부모은중경(紺紙銀泥父母恩重經) 변상은 변상 그림까지 은니로 이룩되었다. 이들 외에도 양식적인 면에 이미 변화를 가져온 상당수의 조선시대 사경 변상이 현존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목판 인쇄술의 보편적 보급과 함께 경판 변상도가 많이 보급되었다. 이 시대에는 ≪법화경≫의 개판이 성행함에 따라 변상도 역시 법화경변상이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 변상을 개판된 연대에 따라 열거하면 1426년(세종 8년) 천로정진합주금강경(川老鄭震合註金剛經)의 변상(1매)과 1574년(선조 7년) 덕주사(德周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578년 서봉사(瑞峰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이 있다.

1600년대에는 1628년(인조 6년) 용복사(龍腹寺) 개간의 화엄경변상(4매), 1631년 수암사(水巖寺) 개간의 법화경변상(4매), 1632년 석왕사(釋王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634년 상계사(○溪寺) 중간의 관음사십이수진언경(觀音四十二手眞言經), 1634년 복천사(福泉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654년(효종 5년) 백운암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661년(현종 2년) 신흥사(神興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665년 영각사(靈覺寺) 중간의 법화경변상(2매), 1668년 운흥사(雲興寺) 개간의 법화경변상(2매), 1672년의 능엄경변상(2매)과 1685년(숙종 11년)의 법화경변상(2매)이 있다.

18세기 이후로는 1727년(영조 3)의 법화경변상(4매), 1779년(정조 3년) 송광사 간행의 법화경변상(1매), 1854년(철종 5년) 성주암(聖住庵) 개간의 유마경변상(3매)이 있다. 그리고 간행 연대를 알 수 없는 해인사 소장 ≪기신론소기회본 起信論疏記會本≫의 변상(1매) 등이 주목된다.

조선시대의 유교 사회 속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았던 부모은중경변상은 매우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개판된 사찰별로 열거하면 징광사본(澄光寺本, 1520)·도솔암본(兜率庵本, 1534)·석두사본(石頭寺本, 1546)·쌍계사본(雙溪寺本, 1547)·송광사본(松廣寺本, 1563)·금산사본(金山寺本, 1720)·용주사본(龍珠寺本, 1796)·통도사본(通度寺本)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 경판 변상 외에 대형의 독립된 변상이 있어 주목된다. 이들은 해인사 소장의 <석가고행도 釋迦苦行圖>(1501)·<근수정업왕생첩경도 勤修淨業往生捷經圖>(1640)·<미타삼존도 彌陀三尊圖>를 들 수 있다. 이들 조선시대의 변상은 그 개판이 17세기까지 더욱 성행하다가 18세기에 들면서 갑자기 줄어들었다. 그것은 변상도의 양식 변화와 함께 사회 경제사적 측면에서 더욱 연구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한국의 고판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나려인쇄술의 연구』(천혜봉, 경인문화사, 1980)
『고려화엄판화의 세계』(장충식, 아세아문화사, 1982)
『고려 영원한 미』-고려불화특별전(호암미술관, 1993)
「법화변상고」(장충식, 『한국불교학』 3, 1977)
「묘법련화경사경변상도의 한 고찰」(문명대, 『한국불교학』 3, 1977)
「신라화엄경사경과 그 변상도의 연구」(문명대, 『한국학보』 4, 1979)
집필자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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