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차난타[實叉難陀, Sikṣānanda, 652~710]는 당대에 활동한 우전국(于闐國) 출신의 역경승으로 한역명은 학희(學喜)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의 「역경편(譯經篇)」에 전기가 있다. 그는 대 · 소승과 이학(異學)에도 능통하였다. 당은 주1 시기에, 60권 『화엄경』의 ‘처와 회[處會]’가 미비하였기 때문에 우전국에 사신을 보내 『화엄경』의 범본을 구하는 한편 역경인을 청하였고, 이에 실차난타가 경전을 가지고 당의 장안으로 왔다. 실차난타는 695년에 낙양 대변공사(大遍空寺)에서 『화엄경』의 역경을 시작하였다. 이 역경장에는 남인도 사문 보리류지(菩提流志)와 의정(義淨)이 참여하였고, 뒤에는 복례(復禮)와 법장(法藏) 등이 참여하였으며, 699년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80권 『화엄경』의 번역을 마쳤다. 기타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등 모두 19부를 역경하였다. 710년에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입적하였다.
본서의 권수제는 결락이고, 권미제는 ‘대방광불화엄경권제육십육(大方廣佛華嚴經卷第六十六)’이며, 판수제는 ‘주 육십육(周 六十六)’이고 그 하단에 주2가 새겨져 있다. 본서는 목판본으로 권제66의 1권 1축의 주3이며, 판식은 상하단변, 무계, 1축의 크기는 29.2㎝×1,138㎝, 광고 23.4㎝, 행자수 1판 24행, 1행 17자이다. 본서는 표지와 권수제를 포함하여 제6행까지 결락이다. 권말에는 음석(音釋)이 있다. 본서에는 고려 왕명의 피휘는 없다. 지질은 저지이고 고려 전기 인본에서 확인되는 인경지로 추정되고 있다. 본서는 1981년 3월 18일에 보물 제687호로 지정되었으며 조병순(趙炳舜)의 구장본이다.
본서는 간기가 없어 간행 시기 및 경위는 분명치 않다. 자체 및 지질의 특징에 의거, 고려 숙종 연간(10951105년)의 사찰판, 혹은 고려 전기 사찰이나 개인 간행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서는 판식, 자체, 지질 등의 특징에 의거, 1098년에 합주 호장 이필선(李必先)의 시재로 개판된 진본 『화엄경』 권37, 1098년 해인사 승 성헌(成軒)이 시주하여 판각한 목판과 숙종 연간(10951105년)에 지리산 증륜사(拯倫寺) 주지 양춘(輰春)이 주관하여 간행한 판본 등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13세기에 간행된 고려재조대장경, 해인사 소장 사간판과 함께 같은 고려 사찰 전본 계통이라 할 수 있다.
당(唐) 대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 『화엄경』은 7처 9회 39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서는 그 가운데 권제66 ‘입법계품제삼십구지칠(入法界品第三十九之七)’이라 하여 『화엄경』의 전체 39품 가운데 마지막 품인 제39번째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일곱번째에 해당한다. 내용은 80권 『화엄경』의 제9회의 설법으로 선재동자가 남방에서 55명의 선지식을 역방하며 도를 구하여 법계의 이치에 증입(證入)하는 시말을 설하였다. 본서는 선재동자가 법보계(法寶髻) 장자, 보안(寶眼) 장자, 싫은 줄 모르는 왕[無厭足王], 대광(大光)왕, 부동(不動) 우바이 등의 선지식을 찾아 보살의 도를 질문하고 답을 듣는 내용이다.
본서는 간기가 없어 간행 시기 및 경위는 분명치 않지만, 고려 숙종 연간(1095~1105년) 혹은 고려 전기 간행본으로 고려 사찰 전본을 저본으로 판각하여 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는 최초의 목판 대장경인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이라 칭하는 북송의 관판(官版) 대장경이나 고려초조대장경과는 달리 고려 사찰 전본 17자 계통으로 불교서지학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