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제종교장총록』은 고려 전기 대각국사 의천이 1090년에 편찬한 고려와 송·요 등에서 수집한 제종 교장 등 불교 서적의 총목록이다. 의천은 대장경 등의 경론을 해석한 장소를 갖추어 불법을 널리 펴고자 송, 요, 일본 등지에서 장소를 수집하였다. 의천의 교장 조성 사업은 1090년에 일장의 교장을 갖추었고, 이 제종 교장의 총목록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이다. 본서는 장소 목록의 효시로서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의 불교 교학이나 신앙, 불서 교류와 유통을 살펴볼 수 있어 불교 문화의 교류사적 의의가 크다.
의천(10551101)은 고려 제12대 국왕 문종과 인주 이씨 인예왕후의 넷째 아들로 1055년 9월 28일에 출생하였다. 자(字)는 의천, 법명은 후(煦)이다. 의천은 11세에 화엄종의 난원(9991066)에게 출가하여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 · 소승 교학을 수학하였다. 의천은 출가 이후 불교학을 배우고 강론하면서 고려에 대장경의 경론(經論)은 갖추어져 있으나 이를 해석한 소초(疏鈔)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교법을 바로 펼 수 없음을 인식하였다. 이에 의천은 고려에 전존하고 있는 장소(章疏)와 송(宋) · 요(遼)의 신 · 구 장소를 모아 이를 일장(一藏)으로 조성코자 하였다. 의천은 1085년 4월 8일 제자인 수개, 양변 등과 함께 송에 입국하였고, 1085년 5월 21일 변경에 들어가 철종 황제를 만나고, 화엄종 승려인 유성, 정원 등 다양한 종파의 승려를 찾아 교류하였다. 의천은 1086년 5월 29일 14개월여의 입송구법을 마치고 장소 3천여 권을 수집하여 귀국한 뒤,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국가적 사업으로 주1의 교장을 간행하여 유통시켰으며, 주변의 나라와 종교에 기반한 문화적 교류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와 사상을 일층 성숙시키는 업적을 이루었다.
한편, 의천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하였는데, 1097년(숙종 2) 5월에 천태종의 본산인 국청사가 완공되자 천태 교관을 강의하였다. 이 시기 의천은 화엄종과 천태종의 병립을 통해 불교계를 재편하였다. 의천은 1100년(숙종 5)에 국청사에서 천태 교학을 강하고, 1101년(숙종 6) 2월에는 천태종의 승과를 실시해서 40명을 선발하는 등 천태종의 개창과 발전에 힘썼다. 의천의 활동 가운데 국가적 사업으로는 지남관(指南館), 겸제원(兼濟院)을 복구하여 백성의 편익을 도모하였고,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하였으며, 주2을 건의하여 시행하는 등 숙종의 개혁 정치에 조력하였다. 의천은 1101년 10월 지병으로 총지사에서 입적하였다. 의천의 편찬 및 저술로는 『원종문류(圓宗文類)』,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석원사림(釋苑詞林)』, 『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 등이 있다.
『신편제종교장총록』[이하, 『교장총록』]의 현전본은 일본 경도(京都) 고산사(高山寺) 소장의 1176년[안원(安元) 2] 주3, 고산사장본을 저본으로 한 1645년[정보(正保) 2] 필사본, 일본 경도 낙하서림(洛下書林)에서 1693년[원록(元祿) 6]에 간행한 목판본 등이 알려져 있다. 현재 전하는 주4본은 고산사 소장의 1176년 명공(明空)의 필사본이다. 이후 필사본이나 목판본은 모두 고산사장본을 저본으로 하거나 계통본에 해당한다. 『교장총록』 1176년 필사본[이하, 『안원사본』]은 ‘권제일(卷第一)’의 1축과 ‘권제이(卷第二)와 권제3(卷第三)’ 1축, 전체 2축의 주5이다. 『안원사본』의 크기는 지고(紙高) 28.0㎝, 광고 23.9㎝이고, 주6의 계선(界線)이 있다. 권제1은 10장, 권제2와 권제3은 17장이며, 권제2는 1장의 길이가 41.8㎝[제1장], 39.3㎝[제3장] 등 길이가 각각 다른 종이를 이어 붙였다. 종이는 저지이고 「춘기(春記)」의 단간 및 고문서의 주7에 필사되었다. 한편, 권제1의 지배에 『법화경』의 장소인 『주법화본적불이문(注法華本迹不二門)』 1종이 기록되어 있어 필사 과정에서 누락된 장소를 추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영안이년삼월십팔일(永安二年三月十八日)’이 기록되어 있지만 시기는 미상이다. 『교장총록』의 서문은 ‘신편제종교장총록서(新編諸宗敎藏總錄序)’이고, 서제(序題)와 앞부분이 결락되어 있으며, 권제1의 권수제와 권미제도 일부 결락과 결자가 있다. 각 권의 권수제와 권미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고, 각 권수제의 다음에는 ‘해동유본현행록(海東有本見行錄)’이 기록되어있다. 필사기(筆寫記)는 권제1의 말미에 ‘안원이년병신오월회일(安元二年丙申五月晦日) 이인화사화엄원(以仁和寺華嚴院) 법교경아어본서사(法橋景雅御本書寫) 명공(明空)’, 권제3의 말미는 ‘안원이년병신육월사일(安元二年丙申六月四日) 이인화사화엄원(以仁和寺華嚴院) 법교경아어본서지(法橋景雅御本書之) 명공(明空)’이 기록되어있다. 명공이 1176년 5월 그믐부터 6월 4일까지 인화사 화엄원의 법교 경아의 소장본을 빌려 서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권제3의 말미에는 ‘이타본교합료(以他本校合了)’라 하여 법교 경아 소장본 이외 타본으로 교합한 것을 알 수 있다. 소장인은 권제1과 권제2의 권수제 아래에 ‘고산사(高山寺)’가 날인되어 있다. 『안원사본』은 권제3의 논부에 수록된 『순정리론(順正理論)』 이하의 필체는 다소 차이가 있어 다른 필사자를 상정할 수 있다. 또한 본문에는 다수의 교정 사례가 있는데, 오자 교정(誤字 校訂), 누락 추기(追記), 기타 교정 기호가 확인된다. 1645년(정보 2) 필사본[이하, 『정보사본』]은 고산사 소장본이다. 모미승(栂尾僧)이라 하여 고산사의 영변(永辨)이 필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권 2책이며, 종이는 저지(楮紙), 책 크기는 세로 약 28.2㎝, 가로 약 21.4㎝이다. 책의 장수는 서문 1장, 권제1이 31장, 권제2가 8장, 권제3이 17장으로 모두 57장이다. 『정보사본』의 구성은 『안원사본』과 같다. 본서의 표지에는 ‘십무진원(十無盡院)’이 묵서되어 있어 고산사 십무진원 소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보사본』은 『안원사본』의 교정 기록을 반영하는 한편 자체 교정을 행하였는데, 미판독 표시 및 오자 교정, 오기에 대한 위치 변경, 장소명 위치에 대한 교정 등이 확인된다.
1693년(원록 6) 목판본[이하, 『원록간본』]은 낙하서림(落下書林) 정상충병위(井上忠兵衛)가 간행한 것으로 책의 처음에는 비로정종(毘盧正宗) 백현천룡(白玄天龍)의 주8이 있고, 책말에는 안락수원(安樂壽院) 운창(運敞)의 주9이 있다. 이에 의하면 『원록간본』은 1644년[관영(寬永) 21]에 고산사 법고대(法鼓臺)의 소장본을 운창이 필사한 것이다. 『원록간본』은 뒷면에 기록된 『주법화본적불이문』을 포함하여 전체 장소의 수를 1,010종으로 정리하였는데, 이후 유통본은 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특히, 고산사 소장 『안원사본』은 충손이 심하여 판독할 수 없는 것이 많은데, 『원록간본』은 이를 추정하여 보충하였으나 그 근거를 알 수 없으며, 오자가 많은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한편, 일본 경도 예산문고(叡山文庫)에는 『안원사본』과 1634년[관영(寬永) 11] 고산사 평등심왕원(平等心王院) 혜현(惠玄)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전사(傳寫)한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어 『교장총록』의 또 다른 유통본이 확인된다. 현재 많이 활용되는 『한국불교전서』의 저본은 1936년 경도(京都) 편리당(便利堂)에서 간행한 영인본이고, 참고본은 1693년 대곡대(大谷大) 소장 『원록간본』과 고산사 소장 『안원사본』이다.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본은 일본 대곡대 소장의 『원록간본』을 저본으로 하고 『안원사본』으로 대교하여 간행한 것이다.
『교장총록』은 대각국사 의천이 1090년에 편찬하였지만 간행 여부는 미상이다. 『교장총록』의 편찬은 대장경의 경과 논이 갖추어져 있으나 그 주석서인 소초가 빠져 있어 고려는 물론 송, 요, 일본 등에 산재한 장소를 일장(一藏)의 교장으로 조성하여, 이를 간행하고 유통하려는 불법의 홍포와 관련이 있다. 본서의 편찬 시기는 『신편제종교장총록』의 서문에 ‘시후고려십삼엽재유지팔년(時後高麗十三葉在宥之八年) 세차경오팔월초팔일(歲次庚午八月初八日) 해동전화엄대교사문(海東傳華嚴大敎沙門) 의천서(義天敍)’라고 하여 1090년에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천은 1073년 그의 나이 19세에 「대세자집교장발원소(代世子集敎藏發願疏)」를 지어 국가적 교장 수집 사업을 발원한 이래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의 여러나라에서 장소를 수집하였다. 의천은 교장을 수집하면서 임시 목록인 장소목록(章疏目錄), 교승목록(敎乘目錄) 등을 작성하여 고려에 현행하는 장소를 기록하는 한편 송, 요, 일본 등에 있는 장소를 수집하였다. 의천은 입송(入宋) 이전에 이미 송나라 승 정원과 교류하면서 고려에 현행하는 장소의 목록인 『교승목록』을 전하는 한편 송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장소를 수집하였다. 또한 의천은 1085년 입송시 고려의 장소목록을 작성하여 가져갔고 이 목록을 교류하며 장소를 수집하였을 것이다. 곧 의천의 『교장총록』은 고려의 현행 장소에 더하여 입송구법 이후 중국에 유행하는 장소를 모아 교장을 갖춘 뒤 새로운 목록을 편찬한 것이다. 의천이 『교장총록』을 신편(新編)하기 위하여 작성한 장소 목록에는 고려에 존재하였고 현행(現行)한 것을 대상으로 하였다. 의천의 『교장총록』은 내제(內題)를 「해동유본현행록」이라 하여 ‘무본(無本), 비현행(非現行)’은 수록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실재하고 현행한 장소의 목록이었다. 의천은 1085년에 송나라에 가서 송의 불교계와 교류하면서 3천여 권의 장소를 수집하여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선종 대(1083~1094)에는 「대선왕제종교장조인소(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를 올리면서 약 20년에 걸쳐 조성한 교장을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의천은 당시 고려에 현행하는 장소와 중국에서 구득한 장소를 포함하여 일장(一藏)의 교장을 조성하였고, 이 제종 교장의 총목록을 새로 편찬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 명명하였다. 교장의 총목록인 『교장총록』은 초조대장경의 대장경 목록을 참고하고 당대 지승(智昇)의 주10 등을 참고하여 편찬하였다. 『교장총록』은 경전 목록이 아닌 장소 목록이라는 차이가 있고, 불경의 대분류라 할 수 있는 경 · 율 · 논을 각각 권1, 권2, 권3으로 분리하는 한편 경 · 율 · 논의 소주제에 따라 군별(群別)로 배열하여 추후 기록이 가능케 하는 등 독자적인 분류 체계를 갖추어 편찬하였다.
『교장총록』의 간행에 대해서는 현전본이나 관련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본서의 현전 최고본은 고산사 소장 1176년 필사본인데, 일본에서의 필사 기록은 확인되나 간행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교장총록』은 1090년에 편찬되는 한편 교장의 간행이 시작되었지만, 의천은 1091년에도 고려의 남쪽 지역에서 장소 4천여 권을 수집하였다. 또한 송이나 요나라의 장소가 지속적으로 수입되고 있었다. 요나라의 『화엄경담현결택』이나 『현밀원통성불심요』 등은 1097년에 흥왕사 교장도감에서 간행되었지만 『교장총록』에 수록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후속 장소의 입장과 목록 편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간행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교장은 경 · 율 · 논 등 불전에 대하여 주석한 장소, 계율 및 교단 관련 장소, 제종의 찬술, 사전 · 사휘류의 장소 등을 종합한 일대 총서를 말한다. 고려 전기에 유행한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의 제종 교장에 대한 의천의 『교장총록』 편찬 기준은 주11, 종교(終敎), 주12, 시교(始敎), 주13으로 구분하는 화엄 주14을 근본적인 입장으로 하였다. 『교장총록』의 구성은 권제1 「해동유본현행록 상」, 권제2 「해동유본현행록 중」, 권제3 「해동유본현행록 하」로 되어 있다. 본문은 경전명을 기록하고 그 다음에 장소명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기술하였다. 본문의 장소 배열은 경전명, 장소명, 권수(卷數), 내용 주기, 찬자명의 순서이다. 경전명과 장소명은 과조(科條) 즉 대항목과 소항목에 해당하며, 경전명은 변란 상단에 붙여서 쓰고, 장소명은 경전명과 달리 변란 상단으로부터 2자(字)의 공격(空格)을 두어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의천의 『교장총록』 권제1 「해동유본현행록 상」 경부(經部)의 경전 배열은 『화엄경』을 필두로 『열반경』, 『비로신변경』, 『법화경』, 『능가경』, 『수능엄경』, 『원각경』, 주15, 『금광명경』, 『반야경』, 『해심밀경』 등의 순서이다. 권제1의 경부 장소의 배열은 대 · 소승의 2승으로 구분하였으며, 원교(圓敎), 돈교(頓敎) 시 · 종교(始 · 終敎), 기타 대승경전 및 소승경전을 순차적으로 배열하였다. 경부에서는 『화엄경』 장소가 177부 1,247권으로 가장 많이 수록되었다. 이는 『화엄경』이 오랜 역사를 가져 이를 해석한 장소의 수량이 많은 것에 기인하지만 의천이 『화엄종』을 중시하였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장총록의 권제2는 「해동유본현행록 중」으로 율부(律部)에 해당한다. 율부는 대 · 소승으로 나누고 경전과 장소를 과조(科條)의 체계로 분류하였다. 율소(律疏)는 『범망경』, 『유교경』, 『사분율』 등의 순서로 수록되었다. 율부의 분류 기준은 대승, 소승, 기타 계율의(戒律儀) 및 교단 관련 장소의 순서로 배열되었다. 대승율에는 『범망경』, 『영락본업경』, 『지지경』, 『불유교경』을, 소승율에는 『사분율』, 『십송율』, 『오분율』, 『율이십이명료론(律二十二明了論)』 등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소승율의 대표인 『사분율』을 먼저 배치하고, 다음에 출가 중심의 구족계인 『십송율』을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율이십이명료론』 이하는 『출요율의강목장(出要律儀綱目章)』 등 율의(律儀) 및 교단 관련 장소를 수록하였다.
『교장총록의 권제3은 「해동유본현행록 하」이며, 논부(論部)와 「제종찬술 및 사전사휘류」의 장소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구분 기준은 대 · 소승으로 2대분하고 경전과 장소를 과조(科條)의 체계로 분류한 점은 권제1, 권제2와 동일하다. 전반부의 논소류는 고려대장경 및 『개원석교록』의 분류 체계에 따라 대 · 소승으로 구분한 점이 주목된다. 이어 「대승석경론」과 「대승집의론」에 해당하는 장소를 군별 수록하였다. 다만 의천은 『개원석교록』과는 달리 석경론(釋經論) 즉 경전을 해석한 논서를 뒤에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다. 대승의 부류에는 종 · 돈교(終 · 頓敎)에 해당하는 주16을 배치하였고, 다음은 시교(始敎)에 해당하는 주17과 주18 등을 배치하고, 다음으로 소승의 『아비담론』 등을 수록하였다. 한편 후반부는 「제종찬술 및 사전사휘류」의 장소이다. 제종찬술(諸宗撰述)에는 삼론, 섭론, 열반종 관련 장소를 필두로, 유식, 천태, 정토 관련 장소를 수록하였고, 이어 사전사휘류에 해당하는 장소를 수록하였다. 『교장총록』 역시 전통적 분류방법인 삼장(三藏)의 분류 체계 및 여러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 분류할 수 없는 장소들에 대하여는 별도의 유문(類門)을 두어 정리한 셈이다.
『교장총록』은 경 · 율 · 논의 3부 아래 경전명으로 과목(科目)을 나눈 후 다시 장소명으로 조목(條目)을 분류하는 과조(科條)의 형식을 취하였다. 장소의 분류는 근사한 소주제 즉 제목순으로 인접시키고 뒷부분에 예찬(禮讚), 참의(懺儀), 비문(碑文), 행장(行狀) 등을 배치하는 분류 방식으로, 각 경전과의 상관성 및 교학 연구의 효율성과 관련이 있다. 의천의 장소관(章疏觀)을 살펴보면, 경과 논은 먼저 과문(科文)을 활용하여 그 전체의 대강을 파악하도록 하였다. 이어 경 · 율 · 논의 정문을 익숙히 한 뒤 소초(䟽鈔)로 단련하여 대지를 파악토록 하였다. 즉, 경론은 크게 과문(科文)으로 분류하여 정문을 완미한 뒤 소초로 경론의 대지를 터득하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의천은 불도의 증득을 위해 ‘경전-논-소초기과’를 순차적으로 활용토록 하였다. 특히 경전의 이해는 소초의 효율적 활용을 통하여 가능한데, 『교장총록』은 ‘경 · 율 · 논 분류 - 대 · 소승의 2승 구분 - 소초기과(疏鈔記科)의 위계적 분류 – 저자 시대순 배열 – 신라와 요(遼)의 장소 후반부 별도 배열’ 등의 독자적 기준에 의해 편찬하였다. 특히, 신라의 저술을 중국의 장소 배치와 달리 마지막에 두어 차별화한 것은 고려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장총록』은 불교 전래 이후 이루어진 경 · 율 · 논 등 불전에 대하여 주석한 장소 등을 일장으로 한 교장의 총목록이다. 따라서 불교 주석서를 통해 신라, 백제, 고려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왕조의 불교 교학이나 의학자(義學者)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신편제종교장총록 : 수록문헌 총람』(고려대장경연구소, 2019)을 기준으로 『교장총록』에 수록된 장소수, 역대 국가별 장소수 및 권수, 찬자별 장소수 및 권수, 경전별 장소 생산국가, 장소의 저술 형식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교장총록』의 내용 통계와 관련하여 1176년 고산사 소장의 『안원사본』은 원문의 훼손과 결락이 있어 권수(卷數)를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이로 인해 각종 통계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서는 간정기찬석(刊定記纂釋) 26권, 현담초축난과(玄談鈔逐難科) 1권, 정원간정(淨源刊定) 과(科) 20권, 의적술(義寂述) 강요(綱要) 1권, 범망경 과(科) 1권, 비구니함주계본(比丘尼含注戒本) 2권, 현탄술(玄憚述) 비구니초(比丘尼鈔) 5권, 십송율 계본사기(戒本私記) 2권, 법명술(法明述) 천유(闡幽) 1권, 주19술(窺基述) 술기(述記) 1권, 백법론(百法論) 총술(總述) 1권, 운인술(雲因述) 초(鈔) 2권으로 추정하여 『교장총록』의 각종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교장총록』 장소수 및 현전 현황
『교장총록』에 수록된 경 · 율 · 논의 장소명 기입은 ‘○疏 ○卷’이 일반적이지만, 일부는 ‘○疏 ○卷 科○卷’, ‘科○卷 大科○卷’ 등으로 과문을 병기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이러한 장소명 병기 등을 구분하여 장소수 및 권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교장총록』 수록 장소의 종수 및 권수
『교장총록』은 편찬 당시 장소명 기술 방식에 있어 ①장소 단독, ②장소-과 병기, ③과 단독, ④과A-과B 병기, ⑤과A-과B-과C 병기 등 다섯 종류로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 구분 기준은 원본의 합부나 후대 합철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분명치 않다. 위의 <표1>과 같이 『교장총록』에 수록된 장소수는 1,010종 4,877권이며 과문(科文)을 분리하면 경부 621부 2,719권, 율부 145부 467권, 논부 322부 1,691권 등 전체 1,088종 4,877권이다.
『교장총록』의 경전별 장소수와 권수, 그리고 전존 현황을 살펴보면, 경부의 장소 수록 순서는 『화엄경』을 필두로 『열반경』, 『법화경』 등의 순서이고, 수록 장소의 종수 및 권수는 『화엄경』 192부 1,270권, 『법화경』 66부 236권, 『금강반야경』 32부 73권, 『대열반경』 3부 207권, 『수능엄경』 28부 174권, 『금광명경』 25부 86권의 순서이다. 율부에서는 『사분율』 61부 307권, 『범망경』 25부 49권, 『불유교경』 9부 12권 등의 순서로 장소를 수록하였다. 논부의 장소 수록수는 『대승기신론』 36부 88권, 『인명론』 30권 98권, 『성유식론』 30부 266권 등의 순서이다. 『교장총록』에 입록된 장소를 기준으로 의천이 조성한 교장의 경향을 살펴보면 경부는 『화엄경』과 『법화경』, 율부는 『사분율』과 『범망경』, 논부에서는 『대승기신론』, 『성유식론』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교장총록』에 입록된 장소 가운데 한문대장경 입장 및 간 · 사본의 형태로 전존하는 장소는 총 395종으로 경부 234종, 율부 50종, 논부 111종이다. 2019년 고려대장경연구소의 고려 교장 결집 및 DB사업에 의한 조사 보고에 의하면, 『교장총록』 1,088부 가운데 전존하는 장소는 395부로 약 36%에 해당한다.
(2) 국가별 장소의 종수 및 권수
『교장총록』의 국가별 찬술 장소를 살펴보면 당이 287종, 북송이 277종, 신라가 178종, 요가 72종이며 고려는 2종의 장소가 확인된다. 장소 찬술 국가 미상은 182종으로 교장 조성 당시에 이미 장소의 찬자 혹은 국가 미상으로 다수가 전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찬술 장소를 경 · 율 · 논부로 세분하여 살펴보면, 『교장총록』 권1 「경부」는 북송이 192종, 당이 158종, 신라가 92종, 요가 37종의 순서이고, 권2 「율부」에서는 북송 45종, 당 44종, 신라가 16종의 순서이며, 권3 「논부」에서는 당 85종, 신라 70종, 북송 40종의 순서이다. 특히, 북송과 요의 장소는 10~11세기에 찬술된 것으로 당대 불교 사상과 신앙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가를 기준으로 경론별 장소의 찬술수를 살펴보면, 경부에서는 『화엄경』과 『법화경』, 율부에서는 『사분율』, 『범망경』, 논부에서는 『대승기신론』 및 유가와 유식 논서가 중심이 된다. 당대의 장소는 287종이 확인되고, 이 가운데 『화엄경』과 유가 · 유식, 그리고 『사분율』에 대한 장소가 중심이다. 이는 당대 화엄종, 법상종, 계율종의 교학이나 신앙의 대두와 무관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라의 장소는 178종 가운데 『화엄경』, 『성유식론』, 『기신론』, 『범망경』이 중심이 되었다. 신라의 교학 연구나 『범망경』을 중심으로 한 계율 연구 등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북송의 장소는 277종이 확인된다. 당시 선종과 천태종이 불교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화엄경』의 장소가 다수 찬술되었는데 이는 화엄종의 재흥, 의천과 정원의 교류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능엄경』은 선종의 종세와 관련이 있고, 계율 장소로는 『우란분경』의 부각과 『사분율』의 연구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특히 『관무량수경』은 천태정토교의 유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의 장소는 72종이 확인되고 경부의 『화엄경』과 『법화경』, 율부의 『사분율』, 논부의 『석마하연론』이 중심이며, 특히 『미륵상생경』이나 밀교 경전인 주20의 장소를 통해 요대 불교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3) 찬자별 장소의 종수 및 권수
『교장총록』 권1 경부의 찬자수는 213인이며 찬자 미상인 망명(亡名)이 16인이다. 이 가운데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의 찬자는 집조생(什肇生)[구마라집, 승조, 도생]이며 3인으로 추산하였다. 권2의 찬자수는 61인, 망명 1인이다. 또한, 권3의 찬자수는 140인, 망명 21인이며 이 가운데 『조론주(肇論注)』의 찬자인 ‘요등삼(瑤等三)’은 광요(光瑤) 등 3인의 편찬으로 인명은 미상이나 3인으로 추산하였다. 『교장총록』 전체 저자는 348인[공저자 4인 포함]이고, 망명이 38인이다. 권별 장소수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부에서는 북송의 고산 지원이 28종, 당대 법장과 종밀이 뒤를 잇고, 고려의 의천과 교류한 정원이 21종, 신라의 원효와 대현의 장소가 다수이다. 율부에서는 당의 도선과 북송의 윤담이 각 20종으로 다수이며, 논부에서는 신라의 대현, 원효, 수(隋) 천태지자의 순서이다.
국가별 찬자수는 장소수를 기준으로 당이 97인[망명 1], 북송 69인, 신라 31인, 요 15인, 수 8인 등의 순서이고, 기타, 진(陳) 5인, 동진(東晉) 7인, 남량(南梁) 3인, 유송(劉宋), 후진(後秦), 북위(北魏), 고려가 각 2인, 남제(南齊), 후한(後漢), 무주(武周), 남당(南唐), 인도(印度), 후당(後唐), 후진(後晉), 북제(北齊)는 각 1인이다. 이외 국가 미상 102인이 있다. 당의 1인은 망명이나 『구사론서초(俱舍論序鈔)』의 ‘망명혹운행만술대감(亡名或云行滿述待勘)’에 의거, 행만이 당대인이므로 당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려의 망명 1인의 찬술은 『해동화엄시조부석존자예찬문(海東華嚴始祖浮石尊者禮讚文)』인데 이는 고려인의 찬술로 추정된다.
당의 찬자수는 97인으로 이 가운데 장소수를 기준으로 10인에 대해 인명과 장소수를 제시하면, 법장[法藏, 27], 종밀[宗密, 26], 도선[道宣, 20], 규기[窺基, 19], 징관[澄觀, 17], 담연[湛然, 13], 지엄[智儼, 12], 길장[吉藏, 8], 이통현[李通玄, 7], 전오[傳奧, 7]이다. 다음으로 북송의 찬자수는 69인이며 장소수를 기준으로 10인을 제시하면, 지원[智圓, 30], 정원[淨源, 30], 인악[仁岳, 25], 윤담[允堪, 21], 영감[靈鑑, 14], 지례[知禮, 10], 우영[遇榮, 9], 원조[元照, 9], 자선[子璿, 8], 담아[曇雅, 7], 지소[智昭, 7], 선총[善聰, 6] 등이 있고, 의천이 입송구법을 전후하여 교류한 정원의 장소가 30종으로 지원과 함께 가장 많다. 이외 종랑(從朗), 준식(遵式), 도린(道璘), 성변(省辨), 중희(仲希)의 장소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북송 불교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반영한다.
신라 찬자는 31인으로 추정되며 인명과 장소수를 제시하면, 원효[元曉, 44], 대현[大賢, 41], 경흥[憬興, 13], 도륜[道倫, 9], 의적[義寂, 8], 신웅[神雄, 6], 원측[圓測, 6], 현일[玄一, 5], 현범[玄範, 5], 연기[緣起, 5], 의상[義湘, 4], 극태[極太, 4], 오진[悟眞, 3], 원승[圓勝, 3], 도증[道證, 2], 자장[慈藏, 2], 혜운[惠雲, 2], 혜경[慧鏡, 2], 최치원[崔致遠, 2], 단목[端目, 1], 혜운[慧雲, 1], 명효[明皛, 1], 지명[智明, 1], 도신[道身, 1], 순경[順憬, 1], 의융[義融, 1], 범여[梵如, 1], 지통[智通, 1], 가귀[可歸, 1] 종일[宗一, 1], 승장[勝庄, 1] 등이다. 이 가운데 혜운(慧雲)은 혜운(惠雲)과 동일인으로 추정되지만 ‘자분지범약기(自分持犯略記)’의 찬자 혜운(慧雲)에 대해서는 부운거사(浮雲居土)라 별기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별인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교장총록』에는 요의 찬술을 수록한 것이 특징적인데, 요의 찬자는 15인으로 추정되며 사효[思孝, 23], 전명[詮明, 17], 지실[志實, 5], 도필[道弼, 4], 법오[法悟, 3], 각원[覺苑, 3], 지복[志福, 3], 수진[守臻, 3], 요도종(遼道宗) 어제[御製, 2], 징연[澄淵, 2], 지연[志延, 2], 비탁[非濁, 2], 상진[常眞, 1], 희린[希麟, 1], 보형[保衡, 1] 등이다.
『교장총록』의 저자별 장소수를 살펴보면 신라의 원효가 44종 88권으로 가장 많다. 이어 신라의 대현이 41종, 수의 지의가 31종, 북송의 정원과 지원이 각 30종의 저술이 확인된다. 장소의 전존 상황은 원효의 저술이 39%, 대현의 저술이 17%로 신라인의 저술 가운데 원효의 저술이 비교적 다수 전존한다. 『교장총록』에 수록된 저자 가운데 수(隋) 지의의 저술이 28종이 현전하여 약 90%의 전존율을 보인다. 이는 그의 저술이 국내외에 지속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4) 경전별 장소 생산 국가
『교장총록』의 장소 가운데 수록 수를 기준으로 경부에는 『화엄경』과 『법화경』, 율부에는 『사분율』, 논부에는 『대승기신론』과 『성유식론』의 장소가 다수를 차지한다. 경부의 『화엄경』 장소수는 192종이고, 당에서 82종, 북송 47종, 신라 19종, 요 9종, 수 3종으로 당에서 찬술된 장소가 가장 많다. 『법화경』의 장소는 전체 66종인데 당 20종, 북송 14종, 신라 10종, 요 6종 등이다. 율부의 장소 가운데는 『사분율』의 장소가 61종으로 가장 많다. 국가별로는 당 26종, 북송 15종, 신라 5종, 요 3종 등이다. 논부에서는 『기신론』이 36종, 『성유식론』이 30종으로 장소수가 가장 많은데, 『대승기신론』의 장소는 신라가 10종, 당이 8종, 북송이 5종 등이고, 『성유식론』은 신라가 13종, 당이 10종, 요가 3종이다. 『화엄경』, 『법화경』, 『사분율』의 장소 찬술은 당, 북송, 신라, 요의 순서이다. 논부에서는 신라의 찬술이 가장 많다. 신라는 원효와 대현의 저술이 많기 때문이지만 전반적으로 교학 연구를 통한 많은 장소의 찬술이 이루어진 점에서 특징적이다.
(5) 장소의 저술 형식
『교장총록』의 장소는 ‘○○疏○卷 ○述’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 가운데 ‘○述’과 같은 장소의 저술 형식을 살펴보면, 당나라의 장소 287종 가운데 술[述, 273], 주[注, 4], 간찬[刊纂, 1], 창작[創作, 1], 주어경하[注於經下, 1], 상정[詳定, 1], 집[集, 1], 초[抄, 1], 서[書, 1] 등으로 나타난다. 다음은 북송의 장소 277종 가운데 술[述, 257], 중간[重刊, 4], 주[注, 3], 집[集, 3], 녹[錄, 2], 편[編, 2], 찬[撰, 2], 주어경하[注於經下, 2], 간정[刊定, 1] 등으로 확인된다. 신라의 장소는 178종으로 술[述, 177], 주[注, 1]이다. 요의 장소는 68종으로 술[述, 68], 집[集, 2], 제[製, 2], 수는 53종으로 술[述, 37], 설[說, 16]의 형식이다. 결국 『교장총록』에 수록된 장소의 저술 형식은 ‘술(述)’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장총록』은 장소 목록의 효시로서 대장경이 경전 목록인 것에 대해 장소를 중심으로 조성한 제종(諸宗) 교장의 총목록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본서는 단순한 문헌상의 서목이 아닌 당시 의천이 수집하여 조성한 현행하고 실재하는 교장의 목록인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또한 『교장총록』은 경 · 율 · 논의 3부로 나누고, 다시 경전의 소주제에 따라 군별(群別) 배열하는 등 독자적인 분류 체계를 가진 당시 유례가 없는 교장 목록이라는 점에서 불교 서지학적 의의가 있다.
본서는 11세기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인 고려를 비롯하여 송, 요 등 여러 나라에서 제 종파의 교장을 수집하여 결집한 것으로 이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불교 의학자(義學者)의 학적(學蹟), 불교 철학과 교학의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 사상사적 의의가 크다.
또한 본서는 고려와 송, 요 불교계의 경전 및 장소의 교류와 유통을 알 수 있어 불교 문화의 교류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 한문불교문화권의 고려, 송, 요 각국의 불교 서적의 간행과 그 규모에 대해 사서에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데, 각국의 정사(正史)인 『고려사』, 『송사(宋史)』, 『요사(遼史)』의 「예문지」를 보충할 수 있어 그 가치가 크다.
한편, 본서는 교장의 장소 목록이기 때문에 선종의 어록 등 관련서가 수록되지 않았고, 일본과의 교류를 통한 『인왕경소(仁王經疏)』의 유통이 확인되지만 일본 찬술서를 수록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