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의 제자 혜소가 찬술한 10권의 책이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43권 「황해도」조에 의하면 혜소는 강서사(江西寺)에 주석하였는데, 당시 시중(侍中)이었던 김부식(金富軾)이 항상 나귀를 타고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자연(李子淵)이 창건한 감로사에서는 김부식과 서로 화답하면서 1,000여 편의 시를 지었다 한다. 그는 내외전(內外典)에 해박하고 시문 및 필법에도 능하였다. 특히 화엄학(華嚴學)에 조예가 깊어 『화엄경(華嚴經)』을 강론했다고 한다.
혜소는 항상 의천을 사사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는데, 의천의 처소에 따라다니면서 문장을 토론하였다. 감로사(甘露寺)에서 시를 지었고, 이자현(李資玄)의 제문 및 「금란총석정기(金蘭叢石亭記)」를 지었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권중에 의하면 의천의 행록 10권을 지었고, 김부식은 이를 토대로 의천의 비명(碑銘)을 지었다고 한다. 김부식이 찬한 「개성영통사대각국사비문(開城靈通寺大覺國師碑文)」에는 집필의 기초가 된 자료가 대각국사의 문인 도승통(都僧統) 징엄(澄儼) 등이 가져온 국사의 행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파한집』의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행적이 바로 혜소가 지은 『행록(行錄)』이나 그 축약본일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아니면 이 행적과는 별도의 『행록』이 김부식에게 제공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