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는 의천이 편찬 체제와 내용을 정리하고 화엄교관(華嚴敎觀)의 의학사문(義學沙門)인 처연(處淵)과 이기(理琦) 등이 이를 교정하여 편찬하였다. 의천의 화엄교학은 이기, 낙진(樂眞) 등에 의해 널리 펼쳐진 것으로 보이는데 의천은 바로 이들과 함께 『신집원종문류』를 편찬한 것이다. 『신집원종문류』가 편찬된 시기는 「시신참학도치수(示新參學徒緇秀)」, 의천의 법호(法號), 국왕 선종의 피휘(避諱) 등으로 보아 1087년 이후에서 1088년경으로 본다. 의천은 화엄종의 여러 가지 이설을 종합 정리한 『신집원종문류』를 편찬하여 화엄학을 새로 배우는 학도가 면학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신집원종문류』는 모두 22권이었지만 제1권 제문발제류(諸文發題類), 제14권 제문행위류(諸文行爲類), 제22권 찬송잡문류(讚頌雜文類)만 현전한다.
『신집원종문류』는 현재 일본의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에 『신집원종문류』 권1의 간본, 권14와 권22의 필사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 권14와 권22의 필사본,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에 권 22, 일본 가나자와문고[金澤文庫]에 권20의 사본 일부가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안동 보광사 복장유물로 『신집원종문류』 제22권, 정손(丁遜)의 「법계관문초서(法界觀門鈔序)」 1장이 전한다.
『대각국사문집』 제1권 첫 머리에 「신집원종문류서(新集圓宗文類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서문(序文)에는 ‘신집(新集)’이라는 문구를 썼으나 본문에서는 그냥 ‘원종문류’라고 적고 있다.
이 서문에 의하면, 『화엄경』은 '일진(一眞)의 묘한 문헌이요. 모든 대승 경전을 통합한 웅장한 경전'이라고 한다. 『화엄경』은 ' 비로자나불의 근원을 궁극하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원(行願)을 모두 포함하였으므로 진실로 생령(生靈)의 큰 근원이요 법성(法性)에 일치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후 서문에서 중국 화엄종에서 『화엄경』을 체계화시킨 연혁을 간략히 서술하였다. 이어서 『화엄경』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나라 화엄종단에서 이단(異端)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근본을 버리고 지말(枝末)을 좇아서 현지(玄旨)를 깨닫지 못함을 크게 탄식하여 이 책을 22권으로 저술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신학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 『화엄경』의 뜻을 얻게 하고 『화엄경』의 뜻에 의하여 이성(理性)을 증득하게 하고자 했다는 것과 왕이 ‘원종문류’라는 제호를 내려주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신집원종문류』 제14권에는 법장(法藏)의 『탐현기』 제1권에서 제20권까지의 총론과 요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지엄(智儼)의 『수현기(搜玄記)』 제1권의 요문(要文), 『공목장(孔目章)』 제2권과 제3권의 요지, 지상(至相)과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제22권에는 찬송잡문류(讚頌雜文類)로 송(宋)나라 인종(仁宗)의 「삼보찬(三寶讚)」과 황제 천우(天佑)가 『화엄경』 39품을 찬송한 시를 수록하고 있다. 이어 의천이 송나라에 들어가 구법(求法)할 때 그와 함께 여러 선 지식을 참방했던 조산랑상서주객원외랑(朝散郎尙書主客員外郎) 양걸(楊傑)이 지은 「화엄53선지식찬(華嚴五十三善知識讚)」이 수록되어 있다. 양걸의 찬은 비로자나불에 대한 찬시를 시작으로 53선지식에 대한 찬시로 이루어져 있다.
당나라 문장 유우석(劉禹錫)이 찬한 「비로자나화장세계찬(毘盧遮那華藏世界讚)」과 당나라 중종(中宗)이 지은 화엄종주 현수국사(賢首國師)에 대한 진찬(眞讚)도 수록되어 있다. 또 당나라 문종(文宗)이 지은 청량국사(淸凉國師)에 대한 진찬,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지엄화상진찬(智儼和尙眞讚)」, 한림학사 박인량(朴寅亮)이 찬한 「부석존자찬(浮石尊者讚)」,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천하의 고승에게 질문한 진망게(眞妄偈)와 그에 답한 여러 법사와 선사의 답게(答偈), 종남산 종밀(宗密)이 이들 답게의 뜻을 자세히 풀이한 논설과 게송도 실려 있다. 그리고 화쟁편(和諍篇) 8구 게송, 청량국사의 증도송(證道頌), 화엄법계에 대한 황벽(黃蘗) · 나한화상(羅漢和尙) · 백거이(白居易) 등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의 화엄찬이 수록되어 있다.
『신집원종문류』는 의천 당대의 동아시아 불교계를 비롯해 고려 중기에 유행하였던 다양한 화엄 문류를 종합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불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의천은 『신집원종문류』를 편찬하면서 중국 화엄 조사들의 장소를 참고하고 인용하였다. 이 가운데 지엄(智儼), 법장(法藏), 징관(澄觀) 등의 저술을 주로 인용하였으며, 이들의 찬술을 통하여 화엄교학을 정리하였다. 의천의 화엄사상은 초기 징관의 화엄교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입송구법 이후에는 법장계의 정통 화엄종 승려인 정원으로부터 법을 받아 계승하였다. 즉 의천의 화엄교학에 대한 이해의 범위는 법장 등으로 확대되었는데, 그가 『신집원종문류』를 통하여 당대의 화엄학을 정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집원종문류』에는 의천이 강의를 받았던 정원(淨源)의 현수교판론(賢首敎判論) · 판교유차(判敎有差) · 유석언성(儒釋言性)이 수록되어 있고, 현수가 신라의 의상(義湘)에게 보낸 서한(書翰), 『화엄경』을 발간할 때 여러 사람이 지은 기(記)와 찬,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종남산지엄화상보은사회원문(終南山智儼和尙報恩社會願文)」과 우리 나라 화엄종의 초조 의상에 대한 「기신원문(忌晨願文)」, 「화엄경사회원문」, 「불국사아미타불회상찬」 등 최치원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제22권 끝에는 “일본의 남도(南都) 도다이지[東大寺] 고장(古藏)에는 좀먹은 책이 1본(本) 있고, 그 나머지는 얻을 수 없음이 애석하다”라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어, 1710년(숙종 36)에 이 글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신집원종문류』 총 22권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제14권과 제22권 2책이며, 『만자속장경(卍字續藏經)』 제8투(套) 제1집 제1편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