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나 서화를 찬미하는 글체로 남의 좋은 점을 칭송할 때 사용한다. 찬은 ‘송(頌)’과 성격이 같아서 제사에 쓰던 송축사(唐의 顔師古 주)로 신명(神明)에게 고하던 것이다.
후대에 오면서 점차 그 성격이 달라져 신명에게 고하는 것은 도외시되고 인물의 덕을 찬미하는 데로 흐르게 된 듯하다. 찬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형가(荊軻)의 찬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작품이 전하지 않아 형태가 어떠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여타의 작품을 통하여 볼 때에 형가의 인물됨을 찬미한 정도의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에 이 체를 모방하여 찬을 짓는 사람이 많았고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이 체로 과거까지 보았다고 한다. 찬의 체는 매구가 4언으로 격구(隔句)하여 운(韻)을 다는 운문으로 짓는 것이 상례이다.
5∼7언 또는 8·9언 등의 장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경우에도 운자는 꼭 단다. 그러나 초기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짓고 반고(班固)가 『한서(漢書)』를 지을 때 편말에 붙인 찬은 운어가 아니라 산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송나라의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의 찬에서 운문으로 지은 것이다. 그 뒤로 그를 본받게 되어 정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찬의 종류로는 서사증(徐師曾)의 『문체명변(文體明辨)』에서 3종류로 나누고 있다. ① 잡찬(雜贊)으로 인물이나 문장 그리고 서화 등을 찬미한 것, ② 애찬(哀贊)으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여 그의 덕을 기리는 것, ③ 사찬(史贊)으로 인물의 잘잘못에 포폄을 가하여 논평하는 것 등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애찬과 사찬이 수용은 되었다. 그러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잡찬만이 위세를 떨쳤다. 찬의 저작은 신라 때에 최치원(崔致遠)의 「화엄불국사 석가여래 수상번찬(華嚴佛國寺釋迦如來繡像幡贊)」에서 시작되었다.
그를 이어서 영찬(影贊) · 진찬(眞贊) · 상찬(像贊) · 자찬(自贊)과 같이 인물의 영정 옆에 그 덕을 찬미하여 쓴 것이거나 서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찬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삼국유사』 등에서 보이는 찬은 승려의 불덕을 칭송한다는 말로 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