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의천(義天)의 속성은 왕(王), 이름은 후(煦)이며, 1055년(문종9)에 태어났다.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仁睿王后) 이(李)씨 사이의 넷째 왕자이다. 11세에 화엄종 승려인 영통사(靈通寺) 난원(爛圓)에게 출가했다. 왕자 출신으로 승과를 보지 않고 승통(僧統)에 제수되었다. 1085년 송에 가 정원(淨源) 등 고승들과 교류하고, 항주(杭州)의 혜인사(慧因寺)를 후원했으며, 많은 전적을 가지고 귀국했다. 귀국 후 화엄 종단을 이끌며 천태종을 개창하였고,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대장경의 장소(章疏)를 집대성한 교장(敎藏)을 간행했다. 1101년 입적했다.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이다.
20권 1책이다. 『대각국사문집』은 1931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해인사 사간장고의 목판을 인출하여 영인 간행하면서 『대각국사문집』 20권에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을 합쳐 23권 이상으로 편집하면서, 이후 『대각국사문집』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였고 오류가 답습되어 왔다. 『대각국사문집』은 의천의 글을 모은 것이고, 외집은 문집의 보유판으로 의천이 송, 요, 고창 등 다른 나라 사람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시, 대각국사에 대한 비문 등을 수록한 것이다. 『대각국사문집』의 여러 판본 중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이 가장 선본(善本)이나 권19를 제외한 나머지 권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갔다.
『대각국사문집』 20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2는 서(序)로, 「신집원종문류서(新集圓宗文類序)」, 「신편제종교장총록서(新編諸宗敎藏總錄序)」, 「간정성유식론단과서(刊定成唯識論單科序)」 등이 있어 의천의 저술과 불교 사상에 대해 전하고 있다. 권34는 사(辭)로 이 가운데 「신창국청사계강사(新創國淸寺啓講辭)」는 국청사의 낙성식 때 천태교관(天台敎觀)을 개강한 것을 기록하고 있어, 고려 천태종의 성립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권58은 표(表)인데, 의천이 송 철종(哲宗)과 황태후, 요의 도종(道宗), 고려의 선종과 숙종 등에게 올린 표문으로 의천의 국제적인 활동과 고려의 국제 관계를 보여 주나 권6은 표1편을 제외하고 대부분 결락되어 있다. 권911은 장(狀)이다. 송의 철종과 황태후, 고려의 숙종, 스승인 정원, 그리고 송에 있을 때 여러 지역의 지방관들에게 보낸 글이나 결락이 많다. 그중 권10의 「상정원법사서(上淨源法師書)」 등에서 의천과 스승인 정원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고, 의천이 송에서 수입한 불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권1213은 논(論)과 서(書)인데, 결락이 많지만, 권12의 주전론(鑄錢論)은 실제 숙종의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권1415는 소문(疏文)인데, 이 가운데 「대송천태탑하친참발원소(大宋天台塔下親參發願疏)」는 천태종 개창, 「기일본국제법사구집교장소(寄日本國諸法師求集敎藏疏)」 교장 수집과 관련된 자료이다. 권16은 제문(祭文) 중 「제분황사효성문 (祭芬皇寺曉聖文)」에서는 원효를 ‘해동교주 원효보살’로 찬양하고, 원효가 백가의 쟁론(諍論)을 화해시켜 일대지공(一大至公)의 논리를 밝혔다고 하여 찬양한 뒤 원효의 사상을 요약하고 있다. 권17~20은 시(詩)이다.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 교류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의천의 소회도 진솔하게 드러나 있어 의천의 불교 사상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천을 이해할 수 있으며, 국문학 자료로도 의미가 있다.
의천의 활동과 불교 사상뿐만 아니라 고려의 정치 상황과 천태종 창립과 같은 불교 교단의 운영, 고려와 송, 요, 일본과의 불교 교류 등을 전하는 자료이다. 11~12세기 초의 고려시대의 모습이나 불교 문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를 담은 책이라는 면에서도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