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과 축문(祝文)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문과 축문은 그 내용에 차이가 있고, 글의 길이에도 차이가 있다. 제문은 축문보다 긴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의 종류가 많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묘(宗廟)·사직(社稷)에 올리는 제사였고, 풍(風)·운(雲)·뇌(雷)·우(雨)·악(岳)·해(海)·독(瀆)·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문선왕(文宣王)·역대시조·마조(馬祖)·선목(先牧)·영성(靈星)·명산대천 등 제사의 대상이 많았다. 그에 따라 제문 또는 축문이 있었다.
사서(士庶)의 사례(四禮)를 정리한 이재(李縡)의 ≪사례편람 四禮便覽≫에 의하면, 상례(喪禮)의 조(弔)·천구(遷柩)·발인(發引)에는 제문이 있고, 치장(治葬)·급묘(及墓)·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길제(吉祭)에는 축문이 있으며, 제례(祭禮)의 시제(時祭)·이제(禰祭)·기제(忌祭)·묘제(墓祭)에도 축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소상과 대상에는 축문뿐만 아니라 제문도 쓰는 경우가 많다.
대개 축문은 죽은 사람이나 조상 또는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수(祭需)를 드리니 받으라는 내용의 간단한 글이지만, 제문은 죽은 사람을 추도, 추모하는 내용을 담은 글이기 때문에 자연히 길어지게 마련이다.
현존하는 제문 중에는 유학(幼學) 이상위(李相渭)가 30세 전에 죽은 부인 장씨(張氏)의 탈상을 당해 쓴 것이 있는데, 1,000여 자의 긴 글이다. 정경세(鄭經世)의 ≪우복집 愚伏集≫에는 <제종숙참봉문 祭從叔參奉文>이 있는데, 1,320여 자나 된다. 제문은 한문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나, 부녀자가 지은 것은 한글로 되어 있다. 이재의 ≪사례편람≫ 상례 조(弔)의 제문 서식은 다음과 같다.
維
年號幾年歲次某年某月干支朔某日干支忝親(備要隨所稱) 某官姓某謹以淸酌庶羞之奠致祭于 某親某官某公之柩云云(別爲文字以敍情意)尙
饗
축문의 서식도 기두(起頭)와 결사(結辭)는 제문과 같으나 제사의 종류와 대상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대부분의 문집에는 제문과 축문이 실려 있다.
≪동문선≫에는 제문 52편, 축문 14편이 있는데, <제오방문 祭五方文>·<제김상서문 祭金尙書文>·<제우사문 祭雨師文>·<기우우사원단제문 祈雨雩祀圓壇祭文>·<양촌선생권문충공근제문 陽村先生權文忠公近祭文>·<후토축 后土祝>·<풍사축 風師祝>·<기청축 祈晴祝>·<종묘기우제축문 宗廟祈雨祭祝文> 등이다.
고위 관원이 죽으면 왕이 신하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이 때에 쓰는 제문을 치제문(致祭文)이라고 한다. 현재 전하는 고문서에도 제문·치제문·축문 등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