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진

  • 종교·철학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전기 승통, 귀법사 주지, 법수사 주지, 왕사 등을 역임한 승려.
이칭
  • 오공통혜(悟空通慧)
  • 시호원경(元景)
  • 자정(子正)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114년(예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통|귀법사 주지|법수사 주지|왕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이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병조 (둥국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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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전기 승통, 귀법사 주지, 법수사 주지, 왕사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속성은 신씨(申氏). 자는 자정(子正), 호는 오공통혜(悟空通慧). 이천 사람. 어렸을 때 출가하여 영통사(靈通寺) 경덕국사(景德國師)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닦았고, 1056년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8년(문종22)에 승과에 급제하여 대덕(大德)이 되었고, 후에 의천(義天)을 따라서 송나라에 건너가 항저우(杭州)의 혜인원(惠因院)에서 진수(晉水)를 만나 법을 깨쳤다. 1086년 귀국하여, 숙종 때에는 승통이 되었다.

의천이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과 『원종문류(圓宗文類)』를 편집할 때 그 작업을 도왔으며, 흥왕사(興王寺)에 교장사(敎藏司)를 두고 『속장경』을 조판할 때는 교정작업을 맡았다.

1114년 왕사가 되었으며, 오공통혜라는 법호를 받았다. 그뒤 삼장(三藏) 5,450권을 강독하여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귀법사(歸法寺)와 법수사(法水寺)의 주지로 있다가 나이 70세로 귀법사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원경(元景)이며, 합천군 야로현 반야사(般若寺)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곳에 원경왕사비를 세웠는데, 절이 황폐해짐에 따라 가야산 해인사로 옮겼다. 이 비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 - 『해인사(海印寺)』(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 -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陜川般若寺址元景王師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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