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왕사 대각화상 묘지

  • 예술·체육
  • 유적
  • 고려 전기
고려 중기의 승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의 묘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응현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중기의 승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의 묘지.

내용

지석크기 세로 41.5㎝, 가로 2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기도 개풍군 봉동면 흥왕사터에서 일제강점기에 출토되었다.

글씨는 지석 앞뒷면에 정간을 치고 새겼다. 서체는 고려화된 구양순풍(歐陽詢風)의 해서이다. 글은 박호(朴浩)가 지었으며, 글씨는 고세칭(高世偁)이 썼다.

흥왕사는 고려 문종의 원찰(願刹)로 1056∼1067년에 걸쳐 이루어진 2,800여칸의 대가람이다. 의천은 송나라에서 귀국한 뒤 이 절의 제1대 주지로 머물면서 선종 때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속장경(續藏經)을 간행하였다.

묘지에는 출가·수계에서 입송구법(入宋求法)·천태종개창·입적·장례에 이르는 의천의 행적이 약술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1101년(숙종 6) 10월 3일 국사에 책봉되고 같은 달 5일 입적하니, 왕은 애도하며 예를 갖추어 다비(茶毘)한 뒤 영통사(靈通寺) 동쪽 산으로 옮겨 석실(石室)을 쌓아 장사지내게 하였다 한다.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의 「영통사대각국사비(靈通寺大覺國師碑)」,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의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1963년 지정)」와 함께 의천의 사적을 살필 수 있는 석문(石文) 자료이다.

참고문헌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 -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國書刊行會,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