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0월 시문학사(詩文學社)에서 간행한 『정지용시집』 1부에 「바다 2」로 실렸고, 같은 해 12월 『시원(詩苑)』 제5호에 ‘바다’라는 제목으로 또 발표되었다.
작자는 바다에 관한 시를 상당수 썼으며, ‘바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시만 해도 아홉 편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시각적 형상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다는 뿔뿔이/달어날랴고 했다.”로 시작되는 이 시이다.
8연 각 2행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바다’를 사물화하여 사생(寫生)한 해도(海圖)라 할 수 있다. 바다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습을 ‘달어날랴고’ 한다고 인식하면서 작자는 도마뱀 떼를 연상하였다. 그리하여 바다의 풍경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한 상황들을 도마뱀 떼의 이미지를 빌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끝없는 물이랑이 뭍에 부딪쳤다가 흩어지는 그 빠른 움직임을 “푸른 도마뱀떼가/재재 발렀다.”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화하여 표현한 기교는 정지용이 처음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물결의 반복적 현상을 “꼬리가 이루/잡히지 않었다.”로, 파도가 뭍에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을 “힌 발톱에 찢긴/……생채기”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다가 5연에 이르러 시적 자아의 의식공간이 갑자기 확대된다. 바다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포착하여 그가 상상 속에서 조형한 ‘앨슨 해도(海圖)’를 완성시키며 그것을 ‘회동그란히 바쳐 듦’으로써, 물결 따라 ‘연닢’처럼 오므라들고 펴지는 지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그것을 특수한 이미지로 구체화시킨다는 작자의 이미지즘 기법이 절정에 달한 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