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3월『조선지광(朝鮮之光)』 65호에 발표되었고, 작자의 제1시집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1935)에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주권과 국토는 물론, 민족과 그 혼의 상징으로서의 국어마저 핍박받고 억압을 당한 일제강점기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의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정지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정지용의 시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향수라 할 수 있다. 향수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비관적인 현실인식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그리움과 함께 비애의 정조를 띠게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평범한 한 농촌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배기(현 표준어: 얼룩빼기) 황소가 울음을 우는 풍경으로서의 한국적인 농촌 모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다시 가족사적인 그리움이 결합된다. 겨울밤에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우어 괴시는 정겨운 모습이 다가오는 것이다.
아울러 ‘질화로, 재, 뷔인 밭, 밤바람 소리’ 등의 소재가 유년의 회상을 강하게 환기시켜주는 촉매가 된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로서의 소년시절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소년시절이란 흙과 하늘의 대조 속에서 ‘화살을 쏘는’ 상징적인 행위로 요약된다. 그것은 꿈 많던 시절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기만 하던 비상의지의 발현이며, 이상을 향한 몸부림을 반영한다.
여기에 다시 가족사적인 풍정이 연결된다. ‘누이’와 ‘안해’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누이와 아내는 둘 다 그리움의 표상이자 모성적인 따뜻함과 편안함을 일깨워주는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현재와 연속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드러나는 ‘석근 별, 모래성,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 등의 대응 속에는 이제 추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비애감이 담겨져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낙원에 대한 지향을 시로 표현한 「향수」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