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봉상시주부, 홍문관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서 정언으로 복직되고 이듬해 지평으로 승진, 이어 사인(舍人)·응교·집의를 거쳐 통례원좌통례 등을 역임하였다. 1515년(중종 10) 동부승지가 되었고 또 상호군(上護軍)에 임명되었다. 이어 대사간을 지내고 병조참의가 되었다.
1518년 관압사(管押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고, 뒤이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뒤에 황해도관찰사로 나갔으나 도둑을 토벌하지 못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어 강릉부사로 임용되었고, 만기가 되자 이조참의가 되었다.
1528년 좌승지를 거쳐 한성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맏형이 아들이 없어 뒤를 잇지 못하므로 박광영이 작위를 이어 받아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32년 공조참판에 부총관을 겸하였고, 이후 형조참판, 경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박광영은 직언으로 대신들의 미움을 샀고 생원으로 있을 때 나라에서 배척하는 불교를 숭봉했다는 죄목으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 폐비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는 등 많은 파란을 겪었다. 외교에도 상당한 수완을 가지고 있어 중국을 세 번이나 다녀왔고, 어려운 일들을 곧잘 처리해 왕의 신임을 받았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목계일고(木溪逸稿)』
- 『이락정집(二樂亭集)』
- 『호음잡고(湖陰雜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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