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면천군수(沔川郡守)·중군(中軍)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후금(後金)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回答官)·선위사(宣慰使)·선유사(宣諭使)·추신사(秋信使)·춘신사(春信使) 등으로 여러차례 심양(瀋陽)을 내왕하며 후금을 회유하는 데 힘썼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박로(朴로)와 함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잡혀 용골대(龍骨大)·마부대(馬夫大) 휘하의 청군 진영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청나라의 요구로 조정에서 능봉군(綾峰君)과 심집(沈諿)을 왕자와 대신으로 가장시켜 적진에 보내었는데, 마부대가 박난영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하자 두 사람이 왕자·대신임을 증언하였다가 곧 정체가 밝혀지자 청나라 군사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