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선산(현재의 구미) 출신.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의 문하에 들어가 5년간 판소리를 배웠고, 서울에 올라와 송만갑(宋萬甲)으로부터는 「적벽가」를, 정정렬(丁貞烈)로부터는 「춘향가」를 배웠다.
서울에서 명창으로 이름을 얻었으나 더욱 정진하여 김창환(金昌煥)으로부터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김정문(金正文)으로부터 「흥보가」를, 유성준(劉成俊)으로부터 「수궁가」 일부를 배웠다.
1928년과 1930년에는 많은 판소리를 음반에 취입하여 명성이 전국으로 퍼졌다.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 결성에 참가하였고, 1936년 동양극장에서 창극 「춘향전」의 춘향역을 맡았다.
그뒤 송만갑 · 이동백(李東伯) · 오태석(吳太石) 등과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여 창극운동에 가담하였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판소리에 전념하였다. 1960년 「흥보가」전바탕을 취입하였고,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흥보가」를 잘하였고, 그 중에서도 ‘제비노정기’와 ‘비단타령’에 출중하였다. 1972년 이후로는 판소리보존회 이사장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소리는 조상현(趙相賢) · 박초선(朴招宣) · 성창순(成昌順) · 성우향(成又香) 등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