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양주교수, 봉상시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추천으로 지평(持平)이 되었고, 1567년(선조 즉위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그 뒤 대사간·함경도관찰사·대사헌·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하였다.
1579년 이조참판에서 형조판서에 특진, 이조판서·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우참찬·호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우찬성이 되었다. 1582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였고, 이어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뒤 다시 우찬성을 거쳐 좌찬성이 되었다.
기품이 장중하고 의지가 확고하였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고 가법이 엄정하였다. 또한, 검소하여 청빈하게 살았으나 남을 돕기에 힘썼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월사집(月沙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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